◎신화와 역사속의 여행자그리스의 거장 테오도로스 앙겔로플로스 감독(61). 80년 「구세주 알렉산더」로 그는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우리에게는 낯설다. 좌파적 성향 때문이었다. 아주 최근에야 두편의 영화로(안개속의 풍경, 율리시즈의 시선)로 그는 불쑥 다가와서 신화와 역사와 이미지들을 풀어 놓았다.
독특한 리얼리즘 미학을 구축한 그의 영화로 여행을 떠나는 일은 무척 힘겹고 지루하다. 생각할 필요도, 여유도 없는 영화에 익숙한 관객에게 앙겔로플로스는 대화와 사유를 제안한다. 대화와 사유 공간은 너무나 영화적인 할리우드적 율동을 배제하는데서 생겨난다.
그는 자신의 영화를 『사건이 발생하는 시간들 사이의 사멸된 공간(Dead Space)』이라고 규정했다. 그 사멸된 시공은 프랑스의 장 르느와르나 러시아 타르코프스키 감독처럼 영화속의 시간을 실제와 일치시키는 롱테이크로 살아나고, 관객이 영상속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 기회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그의 영화 속으로 들어간다면 영혼을 울리는 소리와 움직임과 시간들을 느낄 수 있다. 그의 국내 첫 개봉작이 된 로드무비 「안개속의 풍경」(89년작)은 상상속의 아버지를 찾아 독일로 떠나는 어린남매(알렉산더와 볼라)의 이야기이다. 그들의 절망은 길거리에서 겪게되는 사건보다 그것을 이어주는 느린 장면들에 의해 비극성을 갖는다.
주위의 모든 인간과 사물들은 정지한다. 그 가운데로 남매가 걸어간다. 세상(인간과 이념과 역사)도 하나의 풍경일 뿐이다. 시간을 허무는 듯한 반복되는 공간(기차안)을 관객들은 자유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의미를 부여한다.
「율리시즈의 시선」은 내전과 살륙이 끊이지 않은 20세기 발칸반도에 머문다. 3시간30분의 긴 여정으로 그는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휴머니즘이 사라진 대지 위에서 역사와 희망과 전망없는 미래를 생각한다.
자유로운 시공속에 그리스의 신화가 현실에 스며든 영화는 화려한 풍경에 이끌려 그냥 사라지고마는 순수의 시선을 찾는다. 주인공 A(하비 키이텔)가 찾은 1904년의 발칸반도를 담은 필름, 처음 카메라 파인더로 들여다 본 그 최초의 시선은 바로 희망의 출구이다.
영화에서 A는 『이것이 여행의 끝이길 바랬는데…』라고 말한다. 감독 자신의 또 다른 시간여행을 예고하는 듯하다.
□연보
1935년 아테네에서 출생
61∼64년 소르본느에서 수학
64∼67년 「디모크라티키 알라기」에서 영화평론가로 활동
주요작품「방송」(68년) 「범죄의 재구성」(70년) 「유랑극단」(75년) 「구세주 알렉산더」(80년·베니스영화제 금사자상) 「시테라섬으로의 여행」(84년·칸영화제 각본상) 「안개속의 풍경」(89년·베니스영화제 금사자상) 「율리시즈의 시선」(95년·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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