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획일화와 내재된 폭력/기교없는 간결한 영상에 담아여성감독 임순례(35)에게 세상은 단단한 성채와 같다. 경쟁을 뚫고 성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황량한 들판을 떠돌아야 한다. 비좁은 성은 좀처럼 새롭게 지어질 것 같지 않고, 사람들은 언제나 넘쳐난다.
데뷔작 「세 친구」는 기성의 시각에서 보면 모두 비정상적인, 성밖을 떠도는 인간에게 철처히 초점을 맞춘 얘기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약하고 순수하고 게으른 20살의 세 친구도 알고 있다. 인간답게 살고 대접받기 위해 가야할 곳이 어디라는 것을. 그러나 그들은 대학에 낙방했다. 밀려난 그들은「사회 부적응자」이다.
이들에겐 이름도 필요없다. 감독은 신체적, 성격적 특징 만을 담은 무소속, 섬세, 삼겹이란 별명으로 익명성을 부여했다. 그들은 자신의 꿈을 어디에서도 얘기할 수 없다. 갈 수 있는 곳이란 변두리 중국집이나 포르노영화를 틀어주는 비디오방 뿐이다.
무소속(김현성)은 만화가가 되기 위해 작업실과 출판사를 전전하지만 모멸과 사기만 당한다. 미용사가 되고싶은 섬세(정희석)는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악다구니에 정신만 파괴된다. 삼겹(이장원)은 실컷 먹고 종일 비디오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가족과 대화도 끊어진 지 오래다.
임순례 감독은 이들을 동정하지도, 이런 세상에 대해 흥분하지도 않는다. 카메라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무심히 어둠을 헤집고 그들을 따라갈 뿐이다. 소외와 절망은 한컷 한컷으로 처리되는 사각공간(미용실 비디오가게 식당)에 갇힌 세 친구, 비오는 늦은 밤 꽃집 앞에 서성이는 무소속, 가발로 몰래 미용연습을 하는 섬세의 모습으로 차곡차곡 쌓인다.
이들에게 군대는 또다른 낮선 사회이자 제도적 억압의 상징이다. 자해소동까지 벌이다 입대한 무소속이나, 병과 체중초과로 면제를 받은 섬세와 삼겹 모두에게 희망의 내일은 올 것 같지 않다. 청각을 잃은 채 일찍 제대한 무소속은 세상의 소리와 차단된 채 거리를 떠돌고, 자신의 성을 잃어가는 섬세는 동성연애자를 따라간다.
단편화한 리얼리즘적 영상이 우리사회의 획일화와 내제된 폭력, 무관심을 어둡게 드러낸다. 때론 단편영화를 연결해 놓은 듯하다. 그러나 그 고리가 어설프지는 않고 힘도 있다. 제1회 서울단편영화제(94년) 대상작 「우중산책」이 밑거름이 됐을 것이다.
·양윤모(영화평론가)솔직하고 양심적인 사실주의(★★★)
·조희문(〃, 상명여대 교수)프로는 아니다. 아직 덜 익었다(★★)
·코아모니터회일그러진 세상속에 비친 우리들의 모습(★★★)
△★★★★ 수작, ★ 졸작<이대현 기자>이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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