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극단 목화의 ‘여우와 사랑을’(연극평)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극단 목화의 ‘여우와 사랑을’(연극평)

입력
1996.11.07 00:00
0 0

◎‘오태석 사단’ 경륜 확인시킨 공연얼마 전 중국 교포들의 충격적인 선상 살인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놀라운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태를 그 지경까지 악화시킨 과정과 상황이었다. 인간들끼리 그것도 같은 핏줄끼리 어쩌면 그렇게 끔찍한 인권유린과 악랄한 착취를 자행할 수 있을까? 그것은 타민족 타국가에 대해 우리가 붙였던 온갖 부정적 호칭을 모두 합쳐도 부족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놀란다는 것도 실은 교활한 집단무의식의 결과이다. 즉 비록 사회 일부의 타락이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듯, 또는 아예 몰랐다는 듯 위장함으로써, 사태의 심각성을 약화시키고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한 그 어떠한 해결책도 나올 수 없다.

극단 목화가 공연중인 오태석 작·연출의 「여우와 사랑을」의 내용은 영악한 서울식 생존법을 터득한 중국 교포들이, 과거 만주보다 더 척박한 서울에서, 온갖 부정한 수단을 동원하여 돈을 모으는 과정이다. 그러나 실제로 오태석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중국 교포들이 아니라 우리의 모습이다. 즉 저면에 깔린 순수와 정으로써 대비 내지 대조까지 이루어 내고 있다.

이에 있어 통상 부정적 이미지를 지닌 여우를 우리가 회복해야 할 순수한 정의 표상으로 삼은 것은 역시 오태석다운 발상이었다. 또한 연변에서 공수해 온 여우의 처리를 놓고 벌이는 온정·냉정의 갈등과, 여우가 사라진 우리 산천으로 여우를 탈출시키는 결말은 가히 압권이었다. 하지만 재일교포와 남북분단문제는 주제를 산만하게 했으며, 야쿠자가 설명하는 송이버섯은 너무 장황하기도 했지만, 얼마 전의 북한 잠수함 사건으로 인해 과도한 의미가 부여되는 듯했다.

극단 목화와 오태석. 우리 연극계에서 이는 거의 동의어로 읽힌다. 그러나 오늘날 그 완성도와 극적 재미에 있어 목화의 작품이라면 믿어도 좋게된 데에는 단원들의 힘도 결정적이었다. 이번 공연에서 무엇보다 즐거웠던 것은 오랜 세월 목화를 지켰던 선배단원들의 경륜을 최근 활동이 두드러지는 젊은 단원들의 패기와 비교해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오태석의 어법을 따르면서도 소위 목화식 연극투라는 비난이 근거없음을 보여주는 선배들의 자연스러움은 후배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리라 생각한다.<오세곤 가야대 연영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