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권 10만원권 등 고액권 발행과 관련한 논란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고액권의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인플레이션과 과소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고액권 발행을 둘러싼 찬반 양론을 들어본다.◎찬성입장/유한수 포스코경영연구소장/물가 올라 1만원권 제구실 못해/수표 관리비용 많고 사용도 불편
우리나라 돈중 최고액권은 1만원권이다. 그러나 민망하게도 1만원권은 고액권 구실을 못하고 있다. 물가는 이미 세계적으로 비싸져 주부가 장을 보러가도 1만원권으로 살 만한 게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일상생활의 거래에서도 1만원권이상이 없기 때문에 여러가지 불편이 따른다. 자기앞수표가 고액권 노릇을 대신하고 있으나 자기앞수표는 엄격히 말해 돈이 아닐 뿐더러 사회적·개인적 비용을 유발하는 등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올해 자기앞수표는 연간 11억장정도가 발행될 것으로 추산된다. 은행들은 이 자기앞수표의 발행·관리비용으로 지난해 6,097억원을 썼다.
개인들도 은행에서 수표를 받자면 장당 30원정도를 지불, 연간 300억원이상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수표를 사용할 때 일일이 이서를 해야 하고 신분증을 보여줘야 하는등의 번거러움도 뒤따른다.
고액권 발행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인플레 심리를 자극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고액권을 발행한다고 해서 인플레가 된다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도 실증적으로 검증된 바 없다. 돈을 많이 갖고 다니면 위험하기 때문에 신용카드를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신용카드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신용거래의 기본은 외상거래다. 외상거래라는 성격 때문에 과소비 충동구매 등 현금사용보다 오히려 인플레를 조장할 가능성이 크다.
신용거래는 또 사회적·개인적 비용을 유발한다. 어떤 가게든 카드회사로부터 거래승인을 받기 위한 시스템을 갖추어야 하고 그 비용은 결국 카드사용자가 물게 돼 있다.
고액권 발행을 반대하는 또 다른 논거로 전자화폐의 이용이 보편화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우리보다 선진국인 미국이나 유럽도 전자화폐는 보편적인 거래수단이기는 커녕 극히 일부의 거래에만 이용되고 있을 뿐이다.
신용사회라는 유럽등 선진국에서도 우리 돈으로 10만원 20만원에 해당하는 고액권을 발행하고 있다. 미국만 해도 100달러가 최고액권이 아니다. 유통이 잘되진 않으나 500달러, 5,000달러짜리도 있다.
고액권이 없어 쓸데없는 사회적 개인적부담을 물어야 하는데도, 이제 신용사회가 다가오고 있으니 참으라고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고액권을 발행해서 당장의 불편을 해결해 줘야 한다. 10만원권을 발행하고 보조수단으로 5만원권을 함께 발행하면 인플레 심리문제도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대입장/이재웅 성균관대 교수·금융통화운영위원/과소비 부추기고 물가 자극 우려/뇌물·탈세 등 음성거래 악용 소지
미국 연방준비은행의 화폐전시실에서 미화 1만달러짜리 지폐를 본 적이 있다. 거기에는 1,000달러, 500달러 지폐도 있었다. 이런 고액권이 어떤 이유로 발행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오늘날에는 거의 유통되지 않으며 주로 전시용으로 보관되어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여행갈 때 갖고 가는 100달러지폐도 미국에서는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니다. 이런 돈을 은행이나 상점에서 쓰려고 하면 으레 창구직원이 상급자에게 보이고 결제를 받기 일쑤다. 마피아가 100달러짜리 지폐로 가득 채운 가방을 주고받는 것은 영화에나 나오는 장면이다. 그같은 거액의 현금거래는 역시 지하경제나 범죄세계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사람들이 현금거래를 선호하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는 1만원권이 가장 빈번히 유통되는데 이것도 불편해서 10만원짜리 자기앞수표의 사용이 늘고 있다. 따라서 수표 대신 아예 10만원권 지폐를 발행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수표는 거래할 때마다 이서를 하고 실명확인을 하는등 불편하다는 것이다. 또 화폐발행비용보다 오히려 자기앞수표의 제조·관리비용이 더 들고 위조도 쉽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액권을 발행할 경우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로 인해 과소비 서비스요금인상 등을 초래, 물가상승을 더욱 부추길 가능성도 적지 않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에서 해방이후 통화개혁을 두 번 했는데 처음에는 10환을 1환으로 그리고 60년대초에 다시 100환을 1원으로 각각 평가절하했다. 즉 화폐단위를 1,000분의 1로 줄인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물가상승이나 대미달러 환율도 몇천배가 올랐다. 이같은 물가상승이 반드시 화폐단위를 변경해서 생겼다고 할 수는 없다. 엄격히 말해서 화폐의 명목적인 평가절하가 물가를 자극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고액권이 발행되고 거기에 따라 씀씀이가 더욱 커지게 되면 인플레이션이 악화할 수도 있다.
1만원권보다 10배가 큰 10만원권 지폐가 발행될 경우 부정 비리의 규모도 크게 늘어날 것이다. 고액권은 특히 뇌물 탈세 등 음성거래의 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에서는 금리가 높아서 기업의 대외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그렇게 금리에 민감한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거액의 현금을 소지하려고 하는지는 모를 일이다. 화폐단위가 커지면 위조지폐의 발생유인도 그만큼 커진다. 이에 비해 고액권 대신 수표거래는 실명확인을 하기 때문에 불편하다기보다 오히려 안전할 것 같다. 수표 및 신용카드 거래를 활성화하고 신용사회를 정착하는 것이 고액권 발행논의보다 생산적이다.
◎“경제규모 커져”“아직은 이르다”/수년전부터 긍정론·신중론 팽팽 고액권 발행의 필요성은 수년전부터 논란의 대상이었다. 경제규모가 커진 만큼 고액권을 발행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긍정론과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로 시기상조라는 신중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고액권 발행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지폐에 비해 사용이 불편하고 관리비용도 많이 드는 10만원권 자기앞수표의 사용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10만원권 자기앞수표 사용량(금융기관 지급제시기준)은 지난해 7억4,810만장이, 올해에는 11억장정도가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10만원권 자기앞수표의 사용이 늘면서 은행들은 지난해 수표관리비용(발행비용+교환결제비용+보관비용)으로 6,097억원을 썼다. 수표이용자들도 300억원정도의 발행수수료(장당 30원)를 부담했다.
고액권을 반대하는 쪽은 현재 경제여건상 고액권지폐 발행은 과소비를 부추기고 서비스요금의 인상을 초래, 물가를 자극할 우려가 있다고 맞서고 있다. 더구나 신용카드등 전자화폐의 사용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는데 고액권을 발행하는 것은 시대흐름에도 맞지 않고 10만원권 수표가 지폐로 대체될 경우 자금추적이 어려워지고 탈루소득의 고액권 저장이 쉬워지는 부작용도 있다고 지적한다.<유승호 기자>유승호>
◎다른 나라 최고액권/스위스 1,000프랑=65만원/독일 1,000마르크=55만원/화란 1,000길드=48만원/일본 10,000엔=7만원/미 5,000달러 발행된적 있으나 유통 안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터키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가 우리나라 1만원권보다 단위가 큰 최고액권을 갖고 있다.
터키의 최고액권은 100만리라로 우리 돈의 8,800원가량이다. 가장 비싼 고액권은 스위스의 1,000프랑짜리로 우리 돈으로 65만4,000원정도 된다. 이밖에 독일 1,000도이치마르크가 우리 돈 54만6,280원, 네덜란드 1,000길드가 우리 돈 47만9,640원정도 된다. 오스트리아의 5,000실링이 38만2,400원가량이고 이탈리아 50만리라가 28만950원, 벨기에 1만프랑이 26만1,100원정도 된다.
스웨덴 노르웨이 룩셈부르크 핀란드등의 최고액권은 우리 돈 10만원대이며 미국과 프랑스는 각각 8만원대(100달러, 500프랑), 일본은 7만원대(1만엔), 영국은 6만원대(50파운드)이다. 미국에서 500달러, 5,000달러짜리가 발행된 적은 있으나 최근엔 유통되지 않고 있다.
우리와 1인당 국민소득이 비슷한 그리스와 포르투갈은 각각 1만드라크메(3만4,500원) 1만에수쿠도(5만3,500원)등의 최고액권을 사용하고 있다.<유승호 기자>유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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