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미국인으로 태어나 자랑스럽다”빌 클린턴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나는 미국인으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92년에 이어 대통령에 재선된 클린턴에게 미국은 말 그대로 「기회의 땅」임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생후 9개월만에 아버지 윌리엄 블라이드 3세가 교통사고로 숨진뒤 난폭한 주정뱅이 의붓아버지 로저 클린턴 밑에서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낸 그는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고 자신의 꿈을 성취시킨 「아메리칸 드림」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63년 고교시절 아칸소 대표로 백악관을 방문,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악수를 한 뒤 부터 대통령의 꿈을 갖게 됐다. 고교시절 엘비스 프레슬리 흉내를 내기도 했고 베트남전 참전을 기피하는 등 「문제아」였던 그의 인생은 예일대 시절 힐러리와 만나 결혼한 뒤 전환점을 맞게됐다.
조지타운대와 영국 옥스포드대를 거쳐 예일대 법대를 졸업한 클린턴은 힐러리의 적극적인 내조에 힘입어 아칸소주 법무장관을 지낸 뒤 79∼81년과 82∼93년 주지사를 역임했고 92년 대통령에 올랐다. 물론 하원의원 선거에서 패배한 적도 있고 아칸소 주지사 시절 연임에 실패하기도 했지만 정치인생은 대체적으로 순탄했다.
그는 대통령 첫 임기 내내 화이트워터에서 트레블게이트에 이르기까지 금전과 여자문제로 시달렸다. 재선운동 막바지에는 외국인의 불법헌금 스캔들로 곤욕을 치러야 했다. 또 부인 힐러리의 지나친 정책개입으로 공화당과 언론의 비판을 받았으며 외교경험이 전혀 없어 소말리아 등에서 시행착오를 저지르기도 했다.
50세인 그는 이같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프랭클린 루스벨트에 이어 52년만에 민주당출신으로 대통령에 재선되는 기록을 세웠다. 그의 승리는 밥 돌 공화당 대통령후보 보다 젊고 임기중 경제가 살아난 덕분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는 유세중『21세기로 가는 미국의 다리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유권자들은 비록 그의 말과 행동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지는 않았으나 그를 선택했다.
때문에 그의 집권 2기 과제는 국민들을 단결시켜 21세기를 향한 미국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망령처럼 그를 따라 다니는 각종 스캔들이 제대로 해결된 것이 없고 공화당이 지배하고 있는 의회의 견제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국민들의 반감을 사고 있는 힐러리의 정치개입도 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능수능란한 언변과 빈틈이 없는 성격,명석한 두뇌에 자신감이 넘치는 클린턴의 집권 2기가 과연 어떻게 전개될 지 주목된다.
◎돌/“내일부터는 할 일이 없다”/패배 시인 36년 정치인생 마침표
대권에 3번째 도전한 밥 돌 공화당 대통령후보는 5일 『내일부터는 할 일이 없다』라며 패배를 시인했다. 이 말은 바로 자신의 정치인생이 이번 선거로 마감됐다는 뜻이다. 60년 캔자스주에서 하원의원으로 당선된뒤 잇달아 4선을 기록했고 68년 상원에 진출, 내리 5선을 한 그의 정치경력은 끝내 대권의 꿈을 못이룬채 종착역에 도달한 셈이다. 결국 「공화당 대통령후보로 뛰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게 됐다.
돌은 이번 대선에 앞서 상원의원직을 포기하는 등 배수진을 쳤으며 154개 도시를 한차례 이상 방문했고 148회의 대중연설을 갖는 등 정력적인 유세를 펼쳤다. 특히 2차대전중 중상을 입어 오른팔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장애인인데다 73세의 고령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의 선전은 비록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인간승리의 모범사례라 할 수 있다.
모두 고인이 된 존 F 케네디, 리처드 닉슨과 동년배인 그는 화려한 각광을 받지는 못했지만 타고난 성실함을 바탕으로 뛰어난 의정활동을 해왔다. 80, 88년에는 각각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부시에 밀려 공화당 대통령후보 지명전에서 분루를 삼키기도 했다.<이장훈 기자>이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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