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새로 단장된 한국일보 오피니언란에 한반도 전문가인 미국인 스티븐 린튼의 특별기고가 실렸다. 그는 한국의 대북한 인도적 지원이 중단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면서 이렇게 썼다. 『외국인들은 왜 많은 한국인들이 북한인들에게 동정심을 표시하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이해하기 어렵기로는 며칠 전 유엔총회장에서 남북한 대표가 서로 주고받은 「상소리」도 있다. 『저쪽 대표의 발언은 개짖는 소리』라는 막가는 욕설에 대해 『먹이 주는 손을 물어 뜯는 격』이라는 응수가 이어졌고, 뒤이어 『반역자』 『범죄자』 등 험구가 쏟아졌다는 것이다.
이해하기 어렵기 전에, 실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설전의 당사자가 동족끼리이니, 가뜩이나 따분한 유엔무대에서 좀처럼 보기힘든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부끄러움을 주기로는 린튼씨의 의견도 마찬가지다. 그 대목은 목에 걸려 그냥 넘기기가 쉽지 않다. 그의 호소는 「심한 설사로 부족해진 염분을 대신해주는 약을 생산하는 공장」을 재건축하는데 한국정부가 국제아동기금을 돕기로 했던 35만달러를 유보하지 말아달라는 간곡한 내용이다. 그는 지난 여름 그가 북한 농가에서 만난 한 병든 소녀의 모습을 묘사했다.
남북한문제는 「동족」의 관계이기 때문에 정서적 측면이 강조되는 경우가 잦다. 험한 욕설이 더 부끄러운 것도 그 탓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공직자 부정부패의 척결을 강한 어조로 강조하고 나섰다. 주식값이 3년래 최저가로 곤두박질하는 등 바야흐로 사정추위가 몰아친다. 부패척결은 이 정부 출범이래의 구호이자 「간판」이었는데, 임기 1년남짓 앞두고 『취임초의 심정으로』 다시 간판을 걸고 나섰음은 예삿일이 아니다. 역시 「부끄러운 일」이다.
김대통령은 지난 4년 가까이 「개혁과 변화」를 구호로, 칼국수 점심이 상징하는 결벽을 안팎에 과시했지만, 장관에서 말단 공무원에 이르기 까지 「과거형 비리」의 탐욕은 여전히 계속돼왔으며, 그것도 더 구조화하고 더 노골화했다는 증거들이 쏟아졌다. 얼마나 많이, 그리고 얼마나 떠들썩하게 잡혀가고 재판받고 「척결」된 공직자 비리였는데, 국민들은 또 얼마나 환호하고 박수치며 90몇% 유례없는 지지를 몰아줬던 것인데, 오늘의 이런 부정부패는 아무래도 수상쩍고, 또 부끄럽다. 「변화와 개혁」은 어디로 갔다는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오래 뿌리박은 부패구조를 그대로 둔 채 사람 중심, 사건 중심으로 대응하는 사정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조적으로 부정과 부패의 온상이 되어있는 제도와 환경을 이대로 두고서는, 설혹 수백명을 잡아가둔다해도 더 많은 비리공직자의 「예비군」이 줄을 이으리라는 것이다. 부패의 사정에 앞서 부패구조의 사정이 급하다는 것인데, 예를들면 국가발전의 모든 부문을 무소불위로 제약하는 온갖 행정규제를 과감하게 완화·철폐하는 조치부터 시작해야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부정부패가 구조화―일상화한 상황에서는 그 구조를 깨뜨리는 제도개선이 필수적이다. 부패의 곪집을 제거해서 근본부터 치료함으로써, 부패하고 싶어도 부패할 수 없는 새로운 토양과 구조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구조가 실제로 어떻게 가능한가. 선거개혁을 위한 노력들, 특히 선관위의 실사결과에 따른 고발을 묵살해버린 검찰의 정치적 결정이나, 잇달아 남발되고 있는 비리사범에 대한 특사조치같은 「개혁의 정치화」가 계속되어서는, 잃어버린 개혁의 순수성을 회복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지금 시작되고 있는 사정은 이 정부가 표방해온 개혁의 마지막 선택이며 기회로 보인다. 개혁이 진행된지 4년 가까이 자났는데도 『김영삼문민정부는 지금도 과연 「개혁적」인가?』를 물어야 하는 국민은 안타깝다.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공직사회의 도덕성 상실은 국민을 부끄럽게 한다. 용기있는, 과감한 처방이 필요하다.<본사 상무이사 겸 심의실장>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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