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베를린-서울 페스티벌에 참가한 적이 있다. 서울 베를린이라는 지명이 시사하듯 이 음악제는 분단이라는 역사적 상황을 공유한 양국의 음악인들이 모여 음악적 교류를 나누고 독일 통일과 같은 역사적 변혁이 한반도에서도 하루 빨리 실현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열린 것이다. 냉전시대 동구권 음악의 중심적 역할을 했던 샤우슈필 하우스에서 열린 이 음악제를 보면서 과거에 비해 좋아진 세월을 실감했던 기억이 난다.그러나 한반도의 통일을 기원하는 뜻에서 마련되었던 그 자리는 진정한 의미의 화합의 장은 아니었다. 북한의 음악인들이 불참했다는 사실보다도 설사 그들이 참가했다 하더라도 이질적인 음악적 감수성 때문에 무척 당혹스러워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서독 음악인들이 아무런 정서적 이질감없이 모였던 그 자리에 남북의 음악인들은 자연스럽게 만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통일을 기원하는 음악제가 나에게는 역설적으로 통일의 길이 멀고 험한 것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것은 평소에 지리적, 정치적 통일만큼 중요한 것이 문화적 감수성의 통일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은 우리보다 훨씬 행복한 입장에 서있다. 바흐와 베토벤의 후손으로 같은 종류의 음악을 들어온 그들에게는 음악적 감수성이라는 측면에서의 문제가 우리만큼 고민스러운 상황은 아닐테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아주 오랜 세월동안 우리는 음악적 감수성의 이질감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어쩌면 바로 그런 것 때문에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게 될지도 모른다. 진정한 의미의 통일은 문화적 동질성의 확보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을 생각할 때 그동안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우리가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주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통일연습은 민족공동의 감수성을 찾는 작업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서로의 음악을 포용하고 그 모든 것을 우리 음악의 무한한 가능성으로 받아들일 때 진정한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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