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무장공비의 훈련강도가 어느 정도인지 그 실체에 새삼 전율할 뿐이다. 5일 사살된 정찰조 2명은 지난 9월 좌초한 잠수함에서 상륙, 도주하기 시작한 후 49일동안 아군 6만여명의 포위망을 뚫고 험준한 산악지대를 주파한 끝에 휴전선을 넘기 직전 우리 군에 포착된 것이다.아군의 추격과 지리적 악조건만이 적이 아니었다. 그들은 굶주림과 추위도 극복해야 했다. 들짐승처럼 단련된 이런 무장공비를 상대로 전개된 우리 군의 그간의 희생과 노고는 결코 가볍게 평가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시말에서 우리 군은 값진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이번 공비 소탕작전을 사실상 마무리한 이날 전투를 봐도 그렇다. 군 발표에 따르면 공비가 처음 발견된 것은 4일 하오 3시께였다. 군은 즉시 수색작전을 폈으나 찾아내지 못하다가 5일 상오 3차례의 교전끝에 아군 장병 3명이 죽고 14명이 부상하는 희생을 내고서야 이들을 사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귀한 생명을 나라에 바친 장병의 영혼과 유족에게 우리는 국민과 함께 위로의 마음을 바치고 싶다. 우리 군의 작전이 좀더 치밀했다면 이런 희생은 줄일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더욱 안타깝다.
공비 2명에 대해 17명의 아군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너무나 큰 손실이다. 과거 공비침투사건 때는 어땠는지 한번 훑어보기만 했더라도 소탕작전의 체계와 방식을 좀더 효과적으로 조직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68년의 울진 무장공비는 120명이 침투해 111명이 사살되고 7명이 체포됐지만 나머지 2명은 영하 20도를 넘는 혹한 속에서 58일을 버티다가 결국 북으로 복귀했다. 78년 충남 광천으로 침투한 공비 3명은 31일 동안 아군 포위망을 교묘히 피해 김포지역의 한강하류를 물 속으로 헤엄쳐 건너가 버렸다.
이들의 행태를 보면 남파되는 무장공비들은 모두 추위나 굶주림은 물론 지형상의 악조건도 얼마든지 돌파할 수 있을 만큼의 초인적인 게릴라 훈련이 돼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절대로 포기하거나 항복하는 일이 없다는 점이 발견된다.
반면에 이번 우리 군의 소탕작전은 초동단계에서부터 너무나 많은 허점을 드러냈다. 「설마 아직까지 살아 있으랴」하는 예단마저 있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마저 갖게 한다. 정규전이나 전면전에만 대비해 왔을 뿐 게릴라전에는 속수무책이었음이 이번 잠수함침투사건을 통해 밝혀졌다.
군이 이를 교훈삼아 뼈아픈 반성위에 대북태세를 재정비할 수 있다면 이번 사건은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아울러 여기서 고삐를 늦추지 말고 마지막 남은 1명을 완전히 소탕함으로써 국민의 불안감을 깨끗이 씻어 줄 수 있도록 분발해 주기 바란다. 그것이 군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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