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홍문 들어서면 금산38경 눈앞에/한굽이 돌면 사연많은 상사바위휑한 가슴을 꿰뚫고 지나가는 바람. 거기 솔기 하나 풀어헤쳐진 옛사랑의 기억이 휘날리기라도 한다면.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서 있고 푸른 바닷물에 나 혼자 잠기고 싶다.
만추.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때.
이런 느낌의 한 자락을 잡고 떠날 수 있는 곳. 남도의 한 섬마을이 있다. 모래시계 세대의 뜨거웠던 젊은 날을 마음 한 켠에서 붙들고 있는 시인 이성복이 노래하는 남해 금산이다.
푸른 하늘가 푸른 바닷가, 그리고 돌 속으로 떠난 그여자…. 남해 금산 가는 길에는 동행이 필요 없을 지 모른다. 있는 듯 없는 듯 길을 이끄는 스무살의 추억들.「빌리 할리데이」나 「쳇 베이커」의 음악이 곁들여진다면 더 할 나위 없을 게다.
남해 금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해발 681m)이다. 불타는 단풍이나 흰 손을 흔드는 억새 따위를 보며 상념이 꿈틀대는 대로 몸을 맡기면 어느새 산중턱. 커다란 암석 사이 음부처럼 갈라진 두 개의 동굴이 발길을 막아선다. 두 줄기의 무지개라는 의미를 가진 「쌍홍문」, 위태롭게 흔들리는 촛불을 따라 돌의 세계로 들어서는 길목이다.
여기부터 소금강으로 불려온 남해 금산 38경이 저마다 하나씩 가진 희미한 전설을 풀어놓을 차례다. 우선 태조 이성계가 백일기도로 등극했다는 사연을 지닌 이태조기단. 이성계는 왕위에 오르게 해준다면 산주위를 온통 비단으로 휘감아 주리라던 약속을 했다. 왕위에 오른 뒤 그는 「비단 산」이라는 금산이름을 하사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아래 편으로 반도 안에서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3대 사찰 가운데 하나라는 보리암. 대숲 사이로 아슬하게 절벽위에 얹힌 절간에는 기도도량으로서의 영험 때문인 지 입시철을 앞두고 몰려든 신자들로 북적댄다.
번잡스러움을 털고 서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그 옛날 상사병 걸린 선남선녀들이 이루지 못한 현실의 사랑 대신 몸을 내던져 내세를 기약했다는 상사바위를 만난다. 금산의 동쪽이 세속적인 바램의 영역이라면 서쪽은 분명 이루어지지 않는 삶, 도달할 수 없는 사랑, 그리고 이별의 공간일 게다. 서정인의 단편 「산」에서 야수 같은 남자에게 몸을 빼앗겼던 여주인공의 울음이 흔들리고 이성복의 떠나버린 그녀가 아직도 묻혀있는 돌의 세계.
이즈음 남해 금산은 아득한 섬들과 푸른 물이 어우러진 바다가 된다. 문화저널리스트 김훈의 표현처럼 슬프고 처절한 계면조의 바다. 산아래 낮게 깔린 다도해로 돌의 세계가 투영되고 바다 위에서 기억속에 화석이 되어버린 그사람을 비로소 다시 만난다. 과거를 향한 열망, 그 사람을 향한 안타까움으로 물수제비를 떠보지만 돌아오는 건 절벽 아래 멀어지는 돌의 울음 뿐이다.
산꼭대기에 있는 여관(부산여관)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 있다면 외롭고 서늘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힐 수도 있으리라.<남해=이재열 기자>남해=이재열>
◎남해 또다른 명소/‘남해의 관문’ 660m대교 건너/해안 달리는 드라이브코스 일품
남해에는 금산말고도 들러야할 곳이 많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 못지 않게 남해를 남해답게 만든 남해대교(길이 660m)는 남해의 관문이다. 봄이면 현란했을 벚꽃길도 금산가는 길목에 펼쳐진다.
서포 김만중이 유배지에서 「사씨남정기」를 쓰며 마지막 생명의 불꽃을 살랐던 노도, 철 지난 바닷가의 정서를 더해 줄 2㎞의 백사장이 있는 상주 해수욕장은 금산 부근이다.
두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남해는 해안선을 끼고 도는 드라이브코스로도 일품이다. 조만간 삼천포와 연륙교가 연결되면 삼천포 쪽에서 들어와 남해섬을 일주해 남해대교로 빠져나갈 수 있게 된다. 해안도로 어디서 멈추어도 산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한폭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남해가는 길은 서울 서초동 남부시외버스터미널(700-2929)에서 하루 4대가 출발하는 직행버스편을 이용할 수 있다. 진주와 순천에 비행기 편으로 가서 시외버스를 갈아 탈 수도 있다.
잠자리는 금산 주변이나 상주해주욕장에 있는 여관, 남해읍의 숙박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식사는 회를 곁들인 깔끔한 한정식이라면 남해읍의 미미식당(0594-64-2251)이 있고, 싱싱해야만 먹을 수 있다는 갈치회 별식을 원하면 미조의 공주식당(0594-867-6728)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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