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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소호<SoHo>/예술혼 숨쉬는 ‘현대미술 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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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소호/예술혼 숨쉬는 ‘현대미술 메카’

입력
1996.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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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10만명 갤러리 248개 밀집/거리 전체가 ‘캔버스 자체’/새단장 구겐하임 박물관도 명물소호(SoHo). 외국 지명이 아니라면 한국 농촌의 작은 호숫가 마을을 연상케 하는 이름이다.

소호는 그러나 세계경제의 중심인 뉴욕하고도 그 심장부인 맨해튼의 남단에 있다. 고개만 돌리면 어디서든 세계무역센터(WTA) 쌍둥이 빌딩이 보인다.

하지만 막상 소호에는 고층 건물은 하나도 없다. 미국 산업혁명 기간인 1860년에서 1890년 사이 지어진 공장 건물들을 예술가들이 작업실로 개조해 사용한 역사 때문이다. 지금은 이들 건물 대부분이 고급 갤러리로 변했다.

소호는 겉만 보면 그저 그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소호는 누가 뭐래도 세계 미술의 메카이다. 파리지엥(파리시민)들이 들으면 유감이겠지만 현대 미술의 조류는 소호에서 시작되고 소호에서 퍼져 나간다.

턱없이 비싼 렌트비를 감당못해 예술가들이 하나 둘 떠난다지만 소호는 그래도 소호다. 소호에는 항상 사람들이 붐빈다. 넓디 넓은 미국땅인데도 토요일이면 남의 어깨를 스치며 지난다. 머리를 분홍과 보랏빛으로 물들인 펑크족, 백발의 노부부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어우러진 곳이 바로 소호다.

소호에서는 세계 초일류 화가들의 작품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브로드웨이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 가면 뮤지컬도 감상할 수 있고 휴스턴가만 건너면 이스트 빌리지로 들어선다.

단풍이 끝 물인 브로드웨이를 들어서자 마자 구겐하임 박물관을 들렀다. 이 박물관은 2년전 대대적인 내부공사를 끝내고 새롭게 단장했다. 그래서 겉모습은 19세기풍이지만 내부는 초현대적이다. 이곳 1층에서는 독일 표현주의의 선구자인 막스 베크만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로비에는 백남준씨의 대형 비디오 작품인 「메카 폰」이 눈길을 끈다.

소호에는 갤러리가 248개나 있다. 세계 50대 화랑 대부분이 몰려 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중 우스터가의 「가고시안 갤러리」는 최고 수준이다. 지금은 미니멀 아트에서 미국 미술계에 최고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리처드 세라의 「뉴 스컬프처」전이 열리고 있다. 예술적 가치는 둘째 치더라도 사무실 문짝만한 크기의 6개 작품이 150만달러에 달한다니 놀랄 뿐이다.

세라의 작품과 불과 열발 짝도 안되는 거리에서 자신들의 작품을 헐값에 팔고 있는 무명화가들과의 만남도 재미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작품경향과는 다르지만 당장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그림을 들고 거리에 나섰다고 말했다.

박물관 주변에는 「거리의 작품」이 널려 있다.

그리니치 빌리지보다 규모는 작지만 그런대로 가볍게 감상하기에 충분하다. 수백개의 마그네트를 붙이고 지붕에는 추상화를 그린 폭스바겐 자동차, 겉면을 낙서그림으로 도배한 미니 밴도 눈요기 거리다. 이 자동차들은 실제로 달릴 수 있다. 거리 한귀퉁이를 점령한 채 더블베이스 리듬에 맞춘 흑인 4중창단의 즉석공연도 발길을 머물게 한다.

소호에서는 끼니 때도 소호의 맛을 느낄 수 있다. 고풍스런 카페에서 브런치와 커피를 곁들여 먹는 것이 제격이다. 아니면 스페인, 이탈리아 등 이국음식을 즐길 수도 있다. 꼭 한국음식만을 먹어야 한다는 사람도 걱정할 이유가 없다. 남쪽으로 걸어서 5분거리인 차이나 타운도 우리 입맛을 즐겁게 해준다. 아니면 백남준씨의 단골카페인 「바리」에서 가볍게 끼니를 때워도 좋다.

인구센서스 직업란에 화가라고 밝힌 3만명의 뉴요커와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10만명의 화가가 단 한번이라도 전시회를 갖고 싶어하는 곳 소호. 소호는 예술가와 예술이 살아 있는 한 이 자리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 같다.<뉴욕=이종수 기자>

◎소호의 어제와 오늘/60년대 무명 아티스트 몰려 형성/표현주의 등 새로운 조류 발달시켜/최근 임대료 ‘껑충’ 다른 지역으로 떠나기도

소호(SoHo)는 휴스턴가 남쪽(South of Houston st)의 줄임말이다. 휴스턴가를 넘으면 그리니치 빌리지다. 남쪽으로는 캐널가에 접해 있고 그 아래는 차이나 타운이다. 동서로는 설리번가와 브로드웨이가 경계다. 면적은 2.5㎦정도 된다.

소호의 건물은 대부분 19세기말에 지어졌다. 대공황 이후 방치돼 한동안 폐허나 다름없었다. 이런 소호에 예술가들이 몰린 것은 3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니치 빌리지의 임대료가 치솟자 가난한 예술가들이 방치된 건물에 터를 잡기 시작했다. 소호에는 천장이 높고 기둥이 없는 공장과 창고가 많았기 때문에 작업실로 개조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갤러리들도 관심을 갖게 됐다. 갤러리들은 무명의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등 유명화가의 독무대인 57가와는 다른 문화를 만들었다. 소호는 보수성이 강한 57가와는 달리 표현주의 등 새로운 조류의 미술이 발달했다.

캐널가와 가까운 장점도 소호의 번창에 한 몫했다. 캐널가에는 한국의 청계천처럼 없는 물건이 없기 때문이다. 백남준씨는 이곳에서 전자부품 등 원하는 건 모두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호는 그러나 지금 그리니치 빌리지의 전철을 밟고 있다. 번화가인 웨스트 브로드웨이는 30평 월 임대료가 2,500달러나 된다. 많은 예술가들이 이스트 빌리지 등으로 떠나고 레스토랑과 부티크가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폴라 쿠퍼」 등 몇몇 일류 갤러리도 최근 넓은 공간을 찾아 첼시로 이사했다.

그래도 소호의 쇠퇴를 말하는 이는 드물다. 갤러리 천지인 소호에서 미술기행을 하려면 꼭 보고 싶은 갤러리를 미리 정해 두는 게 현명하다. 뉴욕 타임스 금요일자 「아트 인 리뷰」를 참고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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