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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통령(스타와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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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통령(스타와 스타일)

입력
1996.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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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과 부드러움속 그만의 고집이…/감색 정장 화려한 넥타이로 ‘악센트’/“내가 고른다” 자신이 유일한 코디네이터/외식은 설렁탕·칼국수집 찾는게 고작스타에게는 「스타일」이 있다. 스타일은 겉으로 드러나는 외양 뿐만이 아니다. 한 사람이 살아온 생의 역정과 살아가는 방식, 생각과 철학도 스타일에 녹아있다. 그래서 스타일론은 인물론이기도 하다.

대중의 관심이 쏠리는 사람을 스타라고 정의한다면 대통령도 당연히 스타이다. 그것도 최고의 스타임에 틀림 없다.

김영삼 대통령의 스타일을 엿보기는 어려운 일이다. TV나 공식석상에서 보는 대통령의 스타일은 늘 정장에 국가원수로서의 권위와 절도가 풍기는 모습 뿐이다.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는 김대통령의 패션은 심플하고 서민적이다. 김대통령은 캐주얼로는 갈색 계통의 셔츠에 스웨터를 받쳐 입기를 고집한다. 부드러운 이미지다. 청바지 같은 파격적인 차림은 해본 적이 없다. 시계는 보기에 편하다는 이유로 「YS시계」를 헐렁하게 찬다. 속옷은 흰색 내의만을 입는다.

청와대 주변의 사람들은 대통령이 기본적으로 스타일리스틱하다고 말한다.

외모로 볼 때 김대통령은 「부잣집 외아들」같은 인상이다. 환한 웃음과 전체적으로 단정한 자태, 단호하게 꽉 다문 입술에서 느껴지는 고집까지 삶의 구김살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같은 인상 덕인지 대통령은 대체로 옷을 잘 받는 편이다. 깔끔하고 댄디한 옷차림으로 야당 시절에는 몇차례 베스트드레서에 뽑힌 적도 있다.

그의 패션 포인트는 단연 넥타이. 거의 감색 싱글을 입어야 하는 업무상 제약 속에서도 화려한 넥타이를 통해 정장의 무거움을 소화해낸다. 또 넥타이를 맬 때는 항시 두 번 감는 「윈저 노트」방식에 매듭아래 홈을 만드는 독특한 스타일을 고집한다. 단조로움 속에 강조를 주는 개성의 포인트이다. 넥타이핀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특정 브랜드보다는 감색이나 붉은 색 계통의 색조를 직접 골라 매는데 정확한 숫자를 모를 만큼 많다.

그러나 양복은 국산 기성복을 고집, 20여벌에 불과하다. 구두도 브랜드를 가리지 않고 국산 기성화를 애용한다. 한번은 다리를 꼬고 앉았을 때 구두바닥에 붙은 5만원짜리 가격표가 보인 적도 있었다.

의상에 얽힌 일화 한가지. 3당 합당 후 민자당 대표시절 한 번은 청와대 국빈 만찬에 초대됐다. 만찬은 정장 차림이었으나 잘못 연락돼 김대통령만 유일하게 연미복 차림으로 참석했다. 그것도 빌려 입은 것이었다. 다른 사람 같으면 무안해서 그대로 돌아갔겠지만 김대통령은 끝까지 얼굴 한 번 붉히지 않고 의연하게 앉아 있었다고 한다.

김대통령의 유일한 코디네이터는 바로 그 자신이다. 대선 때는 어쩔 수 없이 전문 코디의 조언에 따를 수 밖에 없었으나 취임 후에는 『내가 알아서 한다』고 물리쳤다. 고집이 아니면 패션에 대한 자신감일까. 코디가 있다면 야당 시절부터 머리 매무새를 만져온 이발사가 유일하다.

취미는 별로 없다. 조깅과 등산 정도. 노래실력은 실례지만 음치에 가깝고 음악감상이나 TV 영화 연극 등에도 별 관심이 없다. 유신 이후 술과 담배도 딱 끊었다.

67년부터 시작한 조깅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외국 순방중이거나 하루도 빼먹은 적이 없다. 그래서 주치의도 28년생 용띠인 김대통령을 『체력은 50대 초반』이라고 진단한다. 조깅복은 흰색계통을 선호하며 한번 입었다하면 버릴줄 모른다. 경호상 이유로 등산을 못하는 것을 무척 아쉬워한다.

김대통령은 페미니스트적 취향을 갖고 있다. 여성정책에 역대 대통령 누구보다도 관심이 크고 여성을 중용하는데 인색하지 않다. 여성 지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즐거워한다.

대통령의 식단은 매우 서민적이다. 원래 김대통령의 식욕은 주위에서 식탐이라 할 정도로 대단했고 식사 속도도 무척 빨랐다. 외국 순방 때 수행원들이 냄새 때문에 겨우 손대는 시늉만 하는 전통 음식도 깨끗이 비워버리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철저한 자기 관리로 소식에 육식을 피한다. 아침은 시래기된장국에 계란프라이 하나가 고정 메뉴. 점심은 대체로 칼국수 비빔냉면 설렁탕 추어탕 중 하나이다. 저녁에는 밥 한공기에 국 한그릇, 그리고 생선과 젓갈, 김치가 상에 오른다. 생선으로는 갈치구이를 제일 좋아한다.

김대통령은 한달에 두번 가량 일요일 가족예배를 마치고 외식을 한다. 즐겨 찾는 곳은 단골 설렁탕집이나 칼국수집. 그것이 부인 손명순 여사의 불만이라면 불만이다.<신재민 기자>

◎YS 헤어스타일 변천/장발… 염색… 자연스런 회색/정치 역정따라 ‘이미지 변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흰 머리를 길게 기른 「장발의 김영삼」을 기억한다. 그만큼 그 때의 모습이 남긴 투사적인 이미지가 강해서일 것이다.

김대통령의 이미지는 헤어스타일과 깊은 연관이 있다. 물론 그의 이미지 변화과정은 자발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치적 환경이 강요한 측면이 많다.

25세에 당선, 최연소 국회의원의 기록을 갖고 있는 김대통령의 20, 30대는 「미남」 「귀공자」의 모습이었다. 자유당 정권의 탄압과 야당의 이합집산, 4·19혁명과 5·16 군사쿠데타 등 정치적 격동기를 거치면서도 그의 얼굴에는 젊음 때문인지 구김살이 깃들지 않았었다.

김대통령의 얼굴에 고뇌의 표정이 새겨진 것은 박정희 정권의 탄압이 심해지는 것과 때를 같이 한다. 머리를 기르기 시작한 것은 장발 단속 정권에 대한 저항의 뜻이었다. 3선개헌과 더불어 40대 기수론을 제창하며 대중정치인으로 등장했을 때는 벌써 완연한 백장발의 모습이었다.

그러던 김대통령이 머리를 자른 것은 80년 전두환 정권이 그를 자택연금했을 때이다. 유신이 선포되자 술·담배를 끊었던 것처럼 마음을 다잡기 위한 결의의 뜻이었다. 더불어 투사적 이미지는 더욱 강해졌고 그는 민추협을 결성, 민주화 투쟁을 전개했다.

3당합당 후 한동안 부드러운 이미지로 돌아왔던 김대통령은 92년 민자당 대통령후보 경선과정에서 헤어스타일을 다시 한번 바꾼다. 앞머리를 올려 이마를 훤하게 드러냈다. 검게 염색도 했다. 훨씬 젊어 보인다는 점도 고려됐지만 유약하지 않고 단호하며 안정감 있는 여당의 대통령후보라는 이미지를 만들기위해서였다.

취임 후 강력한 개혁정책과 함께 강한 이미지를 심어줬던 김대통령의 「검은 머리」가 다시 회색으로 바뀐 것은 지난해 10월 노태우씨 비자금사건이 터지면서.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며칠 염색을 못했더니 머리색이 빨갛게 되어버렸다.

이때 측근들이 『차라리 염색을 않는게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고 건의했고 김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후 지금까지 김대통령은 자연스러운 헤어스타일로 특유의 온화한 이미지를 심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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