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오랜 기간동안 전체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나라이다. 이 나라에서 자유주의자의 활동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척박한 환경 속에서 자유주의의 씨앗을 뿌린 한 인물이 있으니, 그 이름은 호적(후 스)이란 학자이다.후스는 자유주의를 『타인에 대한 용인(관용)으로써 보장된 개인적 가치와 유지 발전을 사회적 정치적 진보의 근본목표로 삼고, 자유를 정치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다원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독재적인 방법이 아닌 민주주의적 법치의 방법으로 점진적 개혁을 하자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이 한창이던 시절에 북경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술, 문화운동, 그리고 정치평론 등에서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러나 혁명의 격랑속에서는 혁명적 방법이나 근본적 해결을 반대하고 일관되게 「한걸음 한걸음씩」 자유주의적 점진적 개혁을 주장했던 그의 주장은 국민당이나 공산당 어느 쪽에서도 외면당하고 말았다.
그가 남긴 사상적인 족적이 얼마나 컸는가 하면 중국 공산당이 1954년부터 전국의 지식인을 동원하여 대대적으로 벌인 사업이 후스비판운동이다. 왜냐하면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자유주의와 집단주의를 강조하는 공산주의는 서로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격하운동을 보면서 후스는 한시 한수로 그의 심경을 대신한 바 있다. 『들판에 불이 번져도 다 태우지는 못해. 봄바람이 불면 다시 또 싹이 날 걸』
아니나 다를까. 80년대 말엽부터 중국 대륙에는 후스연구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왜 후스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는가. 중국 학자들은 주저함이 없이 『민주화가 진전되고 있는 대만에서는 후스는 과거의 인물이지만, 현대화가 이제 막 시작된 대륙에서는 (자유와 민주를 위해 분투한)후스는 오늘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새삼 우리네 삶은 짧지만 사상의 힘은 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탄탄한 연구내용을 비전공자도 읽을 수 있게 정리한 민두기교수의 노고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공병호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공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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