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유신 이래 보수 기조 유지/자민당 집권은 놀라운 일 아니며 민주당 주목해볼만지난 10월20일 중의원 선거결과를 보고 일본의 극우보수화를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가 일본의 극우를 얘기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우선 초국가주의로 불렸던 일본 파시즘이나 도쿄(동경)의 도심을 누비고 다니며 「애국」을 부르짖는, 다분히 반동적인 집단이 그 좋은 예이다. 군복을 입고 할복자살한 작가 미시마 유키오(삼도유기부)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요컨대 극우는 2차 세계대전 전의 일본군국주의를 연상케하는 세력임에 틀림없다.
일본의 정치문화는 변화보다는 연속성이 강하고 진지한 과거사 인식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극우일본을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현상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현재 일본에는 체제나 사상이나 운동, 그 어느 면에서도 군국주의라고 평가할만한 것이 별로 없다. 그리고 다시 집권하게 된 자민당 안에 극우적 성향의 사람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일본 자민당을 극우정당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극우는 보수의 일부이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의 자민당은 극우 신우익 좌파 등 다양한 인맥이 있고 거기다 「족의원」으로 불리는 테크노크라트까지 포함되어 있다. 한마디로 큰 종합병원을 연상케 한다. 여기서 우리는 새삼 보수국가 일본의 특성을 바로 이해할 필요를 느낀다.
근·현대사에서 일본만큼 보수의 기조를 지켜온 나라는 없다. 일본에는 견제세력으로서의 좌파정당이나 진보적 문화인은 있어도 그 세력이 정치의 중심에 있어 본 적이 없다.
보수일본의 기조는 1868년 메이지(명치)유신 이래 근본적으로 바뀐 적이 없다. 메이지유신은 혁명(Revolution)이 아닌 복고(Restoration)이며, 일본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리던 「다이쇼(대정)데모크라시」도 메이지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다이쇼기의 입헌주의는 대외팽창·제국주의 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으며 일본국내에서 「민주주의」를 실험했던 시기가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의 전성기였다. 쇼와(소화)군국주의도 메이지 지배구조의 필연적 소산이란 것이 많은 학자의 연구결과이다.
1945년후 약 7년간의 맥아더 점령하에 있었던 두 차례의 사회당연립정권도 점령정책의 보수화의 대리인으로 기능했을 뿐이다. 최근의 무라야마(촌산) 사회당의 연립정권은 자민당의 보수기조에 아무런 변경을 가져올 수 없었으며 그 정책의 관료의존도는 오히려 자민당정권 이상의 것이었다. 더욱이 좌파이념의 효용이 땅에 떨어진 지금에 와서 일본의 제1보수정당인 자민당이 집권한 것은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나는 93년 자민당 붕괴의 뉴스가 세계를 놀라게 했을 때도 자민당 재집권의 가능성을 피력한 바 있다. 안정된 보수세력이 평균적인 일본 유권자의 마음을 대변한다고 보면 크게 틀림이 없다.
이처럼 「보수적인, 너무나 보수적인」 일본정치에서 우리가 주목해 볼만한 것은 민주당의 존재이다. 민주당의 색깔은 하토야마 유키오(구산유기부)와 간 나오토(관직인) 두 대표의 얼굴에서 쉽게 읽을 수 있다.
하토야마는 증조부가 국회의장, 조부가 총리, 아버지가 외무장관을 지낸 일본의 명망가로서 그 가문이나 식견에 있어서 일본의 보수적 전통을 계승할만하고, 간 나오토는 시민운동의 지도자로서 자수성가한 신선한 이미지의 정치인이다. 그들은 역사인식이나 리버럴 마인드나 일본인으로서의 자신감에 있어서 우리가 가슴을 열고 대화해볼만한 정치인들이며 그들의 주장속에는 일본 지도자들에게서 찾기 어려운 보편적 메시지도 있다. 이들은 보수의 전통과 진보의 양심과 시민의 소리를 결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나는 민주당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보수 일본의 네트워크를 점진적으로 개혁해 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 주기를 바란다. 만약 민주당마저 지리멸렬해 버리고 구태의연한 보수세력의 독무대가 연출된다면 일본정치에서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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