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음악은 절망 뿐/그러나 그 절망을 딛고독일에서 현대 음악 작곡을 7년간 공부하고 지난 3월말 귀국한 이석한(32)에게 그동안의 다섯 달은 우선 반가움으로 다가왔다. 놀라운 기량의 연주자를 현장에서 확인할 때의 기쁨이 가장 컸다.
그러나 거개가 옛 음악틀을 답습하고 있었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선율적」 음악들이 계속 반복될 뿐이었다. 귀에 익은 음악을 또 듣는 것, 그 일반적 음악 소비 관행에 저항해 자신만의 논리적이고 독창적인 어법을 개발해 내는 방식을 그는 「작곡 행위」라고 믿는다.
6살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그는 재기발랄한 착상과 즉흥적 연주 덕택에 마루음악 반주자로서 이름이 높았다. 고2 때 주변의 강력한 권유로 작곡의 길을 택하고, 83년 서울대 음대에 입학했다.
85년 국내 현대음악의 총본산인 「창악회」 음악제 우승을 기점으로 그는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어 3학년 때부터 1년 동안 공들여 온 작품 「콤포지션」으로 87년 2월 네덜란드의 「가우데아무스 콩쿨」에 입상했다. 89년 ISCM(세계 현대음악 협회)의 국제현대음악제에 입상하자 국제무대가 그를 주목했다.
모두 최연소 수상이었다. 「여성 답지 않게, 힘과 구성력이 인상적이다」는 평가가 따랐다. 그리고는 현대음악 찾아 바다 건너 천리길.
독일 폴크방대, 아우버대, 뒤셀도르프대 등지에서 수학했다. 지난 2월 「윤이상의 「가곡」에 대한 연구」로 라이프치히대 작곡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돌아온 그는 자신의 「운명」을 이렇게 압축했다.
『현대음악은 절망 뿐이다. 이건 정말 나만이 한 것 같았는데, 알고보니 누군가가 이미 했다는 사실을 알게됐을 때의 그 참담함…』
그러나 그 절망을 딛고 14중주곡 「살풀이」를 지어 지난 2월 라이프치히에서 초연했다. 서울대 음대에서 강의할 내년 봄에는 피아노 솔로를 포함한 작곡 발표회를 가져, 자신의 운명을 응시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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