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그림 일을 했지만 만족이란 없는 것이고, 심중에 부끄러움만 가득하다. 작품 한 점 제대로 된 것이 없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면 이럴까 하고 가끔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게 된다.파리에서 가을마다 열리는 미술 행사 FIAC이 올해는 「한국특별초청의 해」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백수십개의 화랑이 수많은 작가의 그림들을 걸어놓고 행사기간 일주일 동안에 백수십만명이 참관한다는 것이다. 명절때의 서울역 광장처럼 관중은 하루종일 물 흐르듯이 움직이는데 한 그림 앞에서 일초동안 머물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군중속에서 그들과 함께 발걸음을 옮기는데 마음 한구석이 착잡하였다. 지금 세계의 미술계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다 여기에 모여있다.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있지만 그림 보는 눈에 있어서는 모두가 전문가들인 것이다. 한 장의 그림을 백수십만명이 일시에 보고 지나가는 것인데 무섭기도 하였다. 과연 어떤 그림이 살아남는 것일까.
미술 평론가들이 있었다. 그림을 사들이는 수집가들이 있었다. 미술관에 종사하는 수많은 전문가들이 있었다.
또 그 군중들 속에는 나처럼 직접 창작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었다. 두꺼운 학생층과 애호가층이 있었다. 그 여러 계층 사람들의 중매역을 화랑이 하고 있었다. 한장의 그림을 그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지나간다. 거기에서 끄떡없이 당당한 그림이 있었다. 그중에서는 나의 눈길을 끌어당겨 못떠나게 하는 그림이 있는 것이었다.
좋은 그림은 반드시 살아남는다. 만명이 잘못보고 지나친다 할지라도 백만명 중에는 누군가 알아볼 것이 아닐까. 설혹 한 세대가 잘못보았다 하더라도 한세기를 그렇게 넘기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결국엔 사필귀정이라 한다. 훌륭한 그림은 언젠가 영화의 자리에 오른다.
창작의 세계란 용서받을 것도 없고 용서할 것도 없다. 좋은 그림 그리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좋은 그림을 가려내는 일 또한 중요하다. FIAC과 같은 국제판에서는 누구 편들 여지가 추호도 없다. 그런 냉혹한 현실을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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