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분황사탑·첨성대 이어 에밀레종까지 “신음”【경주=이정훈·전준호 기자】 경주의 각종 국보급 문화재들이 관리소홀 등으로 훼손되고 망가져가고 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석굴암은 60년대초 설치한 공기건조기의 소음과 진동으로 원형훼손이 우려되고 있으며 국보 제29호인 성덕대왕신종(일명 에밀레종)은 종 안팎이 온갖 낙서와 흠집으로 만신창이가 됐다.
또 국보 제30호인 분황사 모전석탑과 첨성대도 곳곳에 균열 및 틈이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문화재당국은 늘 그랬듯이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큰 문제가 없다』며 대책마련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아 선조들의 귀중한 문화유산들이 유실위기를 맞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75년 구박물관에서 현국립경주박물관 야외종각으로 옮겨진 성덕대왕신종에는 어른 손가락 크기만한 구멍과 길다란 흠집이 수십개나 나 있어 관광객들에게 국보문화재라고 내세우기가 부끄러울 정도다. 특히 신종 안쪽에는 「용」 「김현수」 「손」 등 보기에 흉물스러울 만큼 쇳조각 등으로 휘갈긴듯한 낙서들이 어지럽게 새겨져 있다.
박물관측은 신종의 흠집과 낙서가 모두 구박물관으로 옮겨진 1915년 이전 경주성문 앞에 달려있을 때 생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1995·7·21」이라고 새겨진 낙서 등 일부는 박물관에 보관중인 최근 들어 관리소홀로 발생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야외종각에 보관중인 신종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감시가 소홀하다.
최근 균열과 누수현상이 확인된 국보 제24호 석굴암도 석실 오른쪽 기계실에서 가동중인 대형 공기건조기의 소음과 진동이 석실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높은데도 관계당국의 정밀종합진단 등 대책이 마련되지 않아 문화재 관계자들을 애태우고 있다.
불국사측은 60년대초 석실과 콘크리트 외벽을 사이에 둔 기계실에 공기건조기가 설치된 후 벽면에는 대형트럭이 낡은 다리를 지날 때와 같은 심한 진동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불국사 주지 설조 스님은 『1915년 일제가 석굴암 외벽을 콘크리트로 땜질한 후 한번도 정밀검진이 이뤄지지 않아 훼손이 크게 우려된다』며 『실제 68년 석굴암 석실에는 보살상 사이 틈을 막은 백회에서 떨어진 가루가 바닥을 더럽혔으나 2년전 주지로 부임해 다시 확인해보니 백회가 다 떨어져나갔을 정도로 원형이 훼손돼 있었다』고 말했다.
이밖에 분황사모전석탑 탑신부와 국보 제31호인 첨성대도 인접도로를 질주하는 차량들로 인해 균열이 일어나고 있으며 문화재의 보고로 일컬어지는 경주남산에는 목잘린 불상들이 어지럽게 나뒹구는 등 곳곳이 파헤쳐져 있다.
경주 향토사학자 윤경렬옹(81)은 『문화재관리국이 귀중한 문화유산을 관광자원으로만 치부해 석굴암에 유리막을 달고 유명한 사찰에다 단청을 입히는 등 외부치장에만 치중하고 있다』며 『민족정신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문화유산이 더이상 훼손되거나 변형되지 않도록 원형보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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