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문 스캔들 파문 악재/두차례 TV토론서 결정타/돌 막판까지 힘든 추격/초반 1%차 백중세 출발/‘예산안 파동’으로 와르르미 대선 레이스는 2월초 아이오와주 코커스(당대회)와 뉴햄프셔주 예비선거를 출발점으로 본격 점화했다. 제2기 정권창출을 목표로 한 민주당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당내 경선자가 없었던 만큼 초반부터 느긋한 독주에 돌입했다. 반면 공화당의 밥 돌후보는 언론재벌 스티브 포브스와 패트 뷰캐넌 등 8명의 군소후보들과 후보지명을 위한 힘든 각축전을 벌였다.
돌후보는 아이오와에서 26%의 저조한 지지율을 보인데 이어 뉴햄프셔주에선 아예 뷰캐넌에 선두를 뺏기기도 했다.
스타트는 불안했지만 돌은 곧 저력을 발휘했다. 3월초 조지아 콜로라도 등 8개주 예비선거(주니어 슈퍼화요일)에서 승기를 잡고 텍사스 플로리다를 포함한 7개주 예선(슈퍼화요일)에서 압승했다. 80·88년 예비선거에서 고배를 들었던 돌이 공화당 대선후보로 낙점받은 순간이었다.
3월말께 돌의 지지율은 클린턴 후보에 1%포인트차로 추격, 대선양상은 「클린턴대 돌」의 2파전으로 압축됐다. 하지만 4월말 돌진영의 선거자금 불법모금설이 제기되고 정부기능 마비사태를 촉발한 96년 연방예산안 파동이 공화당의 책임이라는 여론이 형성됐다. 돌의 인기가 추락하며 클린턴과의 지지율 격차가 5월초 20여%포인트차로 벌어졌다. 클린턴은 이에앞서 「화이트워터」사건재판과 관련해 비디오증언을 했지만 여론의 진폭은 미미했다.
부심하던 돌 후보는 「배수진」을 쳤다. 5월16일 상원 원내총무와 의원직을 사퇴했다. 대선에 전념하기위해 35년 의정생활을 마감하는 과감한 승부수였다. 돌의 「충격요법」은 때마침 터진 백악관의 연방수사국 자료열람파문(파일게이트)과 맞물려 6월 중순께 클린턴과의 격차를 10%포인트 미만까지 좁혔다.
7월은 돌에게 악재가 잇따랐다. 억만장자 로스 페로가 출마의사를 밝힌데다 담배 및 낙태문제와 관련, 돌이 실언을 연발하며 지지율 간극이 다시 벌어졌다.
8월 중순 공화당 전당대회를 계기로 돌은 한때 4%포인트차로 추격, 실추한 인기를 만회하는듯 했지만 일장춘몽이었다. 클린턴이 곧바로 민주당전당대회를 화려하게 치른뒤 9월초 대이라크 무력시위를 성공리에 마무리하자 클린턴 우세는 더욱 공고해졌다. 클린턴의 선거참모 딕 모리스의 매춘부스캔들도 「현직 대통령의 프리미엄」을 앞세운 클린턴 인기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두 후보의 최후 승부처는 지난달 두차례 벌어진 TV 대토론. 6일 1차토론에서 언론의 「무승부」판정을 받자 돌은 16일 2차토론에서 클린턴의 도덕성을 물고 늘어지는 적극적 인파이팅에 나섰다. 그러나 결과는 클린턴의 압도적인 판정승.
벼랑끝에 몰린 돌진영은 선거막판 증폭된 민주당의 불법정치자금 스캔들을 집중공략하고 있지만 막판뒤집기에는 역부족인 형국이다. 결국 사기충천한 클린턴과 실낱같은 희망도 포기하지 않는 돌은 격동의 레이스를 마감한 채 국민들의 마지막 심판대위에 오른 것이다.<이상원 기자>이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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