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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포르노냐 전위냐/그 신화와 반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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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포르노냐 전위냐/그 신화와 반신화

입력
1996.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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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된 섹스에의 탐닉/혼돈의 시대 자기 위악인가/그래서 그를 읽기는 고통일지도장정일을 읽는 것은 우리의 「고통」이다. 참담한 고통이다.

아방가르드(전위)와 포르노의 경계선을 위태위태하게 넘나드는 작가. 90년대 문단의 운동권과 포스트모더니즘, 표절과 외설 논쟁의 한 가운데를 독특한 상상력과 감수성으로 헤엄쳐 나왔던 신세대 소설가. 그가 지난달 「자기 모멸의 총결산」이라며 출간한 장편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결국 외설 시비를 견디다 못한 출판사 김영사에 의해 서점에서 자진 회수됐다.

그의 「신화」는 깨진 것일까.

87년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장정일(34)은 90년부터 정확히 2년 걸러 발표한 소설마다 충격을 던졌다. 그의 이름 앞에는 그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문학의 무뢰한」「문단의 돌연변이」에서부터 「신세대문학의 괴수」 「1백년 만의 감수성」이라는 형용이 붙어 다녔다. 그렇지만 그에 대한 문단의 평가는 『본격 문학의 위기인 90년대에 독특한 개성미와 독창성의 창조자』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의 작품은 90년대의 풍요하고 감각적인 문화 분위기에 스며 들었다. 모든 작품이 영화로 연극으로,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작가 김승옥의 「무진기행」속의 안개처럼 알게 모르게 스몄다. 「장정일」은 분명히 90년대 문화 신드롬의 하나였다.

「내게…」는 내용의 80% 이상이 포르노그라피, 그것도 성교의 구체적 묘사에 치중한 하드코어 포르노그라피에 가깝다.

『3분의 1을 읽다가 도저히 더 읽을 수 없어 책을 내던져버렸다』『장정일이 자식이 있다면 이 소설을 읽힐 수 있겠는가』 독자들의 즉각적 비난에서 보여지듯 소설 「내게…」에서 극단적으로 표출된 성은 장정일의 소설을 출발부터 관통해왔다.

첫 소설집 「아담이 눈뜰 때」(90년). 세상에서 갖고 싶은 것이라고는 타자기와 뭉크의 화집, 턴테이블 3가지 밖에 없는 19살의 주인공이 연상의 여화가, 오디오 가게 주인과 비정상적 성관계를 맺고 그것들을 얻는다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 번역돼 한국문학의 선풍을 일으켰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92년),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94년)도 역시 우스꽝스런 상상력과 섹스 이야기를 동원한 소설들이다.

섹스에 탐닉하는 장정일은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것일까. 그에 대한 사회의 「돌팔매」는 어디까지 합당한 것인가.

평자들은 『90년대 중반을 지나는 이 시대의 정체성과 이념적 지향성이 혼란에 빠진 것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그는 자기 위악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에 의해 이같은 소설은 나올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평론가 방민호씨는 『장정일의 소설은 퇴폐일지언정 타락은 아니다. 타락이 기성 도덕에 대한 개인적 일탈이라면, 퇴폐는 사회가 꿈을 상실해가고, 미래가 가시적이지 않을 때 저항하고 발언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지만 장정일의 자기모멸적 퇴폐와 상상력이 궤도 수정 없이 가속화하고 있는 것은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장정일의 변.

『소설은 기껏해야 거짓말에 불과하다. 포르노라는 포장은 내 자신과 작품과의 거리를 한 치도 남겨두지 않고, 나 스스로를 풍자하고 모멸하기 위한 소설의 목적에 합당하기 때문에 빌려온 것일 뿐이다』

그래서 장정일을 읽는 것은 우리가, 우리 시대가 안아야 할 「고통」일지도 모른다. 일찌기 20대 초반의 시인 장정일이 「문명은 사라질 것이다/ 쿵쾅거리는 전쟁에 의해서가 아니라/ 소리없는 침략에 의해…/문명은 일소될 것이다」(시 「물에 잠기다」에서)라고 암울하게 노래한 것처럼.

그는 또 이렇게 노래했다. 「쓸쓸하여도 오늘은 죽지 말자/ 앞으로 살아야할 많은 날들은/ 지금껏 살았던 날에 대한 말없는 찬사이므로」(시 「지하인간」에서).

장정일은 지난해 말부터 프랑스 파리로 떠나 유학중인 아내 신이현(32·소설가)과 생활하고 있다.<하종오 기자>

◎“장정일 것 보셨어요”/존재하는 작품과 해석사이엔 간극

「에로」 비디오는 보고 싶은데 비디오 가게 주인의 눈길이 부끄럽다. 눈치 빠른 비디오 가게 주인들은 이럴 때 넌지시 권한다. 『장정일것 보실래요』

장정일 소설 세편은 나오자 마자 모두 영화로 제작돼 관객을 끌었다. 93년 김호선 감독의 「아담이 눈뜰 때」, 94년 장선우 감독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 올 9월 개봉된 신인 감독 오일환의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한 작가의 소설 모두가 그것도 4년 새 세편이나 영화로 제작된 적은 없다. 영화 뿐이 아니다. 불황을 호소하는 대학로 극장에서도 「아담이 눈뜰때」, 「너에게 나를 보낸다」는 그런대로 장사가 되는 연극이었다.

장정일 이름 석 자가 갖는 대중성이다.

존재하는 「장정일」과 해석된 「장정일」. 그의 작품은 문화산업 제작자와 대중에 의해 「어떻게」소화됐을까.

「포스트모던」소설 논쟁의 중앙부에 자리했던 소설 「아담이 눈뜰 때」는 한 재수생의 성적 방황을 통해 소비와 배설로 이어지는 도시문화를 드러낸 작품. 하지만 정작 영화가 만들어 질 때 관심의 초점은 「최재성이 몇번 벗었냐」는 것이었다. 「너에게…」는 촬영에 들어가면서 부터 아예 정선경의 「예쁜 엉덩이」와 조연 여균동의 「변태 성욕」 연기에만 시선이 집중됐다.

「도착된 성」을 통해 남녀의 사랑과 가부장제를 마음껏 비웃은 「너희가 재즈를…」는 재즈연주형식을 빈 독특한 소설적 양식으로도 주목을 받았으나 영화에는 「처제와의 섹스를 꿈꾸는 파렴치한」만이 있을 뿐이다.

존재하는 작품과 영화, 연극으로 해석된 작품. 그 간극은 넓기만 하다. 그 사이엔 그럴 듯한 소재의 원작으로 「세미 포르노」를 만들어 손님을 끌려는 제작자와 감독의 「음험한」 의도가 있지 않을까.

그러나 무엇보다 「젖소부인…」은 아니더라도 「장정일 식 세미포르노」로 「문화적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대중의 「허위」와 「허영」이 그 핵심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박은주 기자>

□약력

■62년 경북 달성군에서 출생

77년 성서중 졸업. 진학 포기

79년 소년원 복역

왕성한 독서. 다방 DJ

95년 프랑스행

■84 「강정 간다」 등 시로 등단

87 첫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김수영문학상 수상

90 첫 소설집 「아담이 눈뜰 때」

92 장편소설 「너에게 나를 보낸다」

94 장편소설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장정일의 독서일기 1」

95 자전소설 「개인기록」

「장정일의 독서일기 2」

희곡집 「긴 여행」

96 장편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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