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에 숨어있는 역사의 교훈 찾아/절제된 글·그림으로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은 말을 다 쓰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쓰고 싶지 않은 말을 쓰지는 않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옥중에서 검열을 염두에 두고 적을 때와 비슷한 마음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책 머리글의 말미에 저자인 신영복 교수가 적어 넣은 그의 솔직한 마음을 읽으면서 왜 눈시울이 별안간 뜨거워지는지 모르겠다. 저자가 감옥에서 풀려 나온 지도 벌써 8년이나 지났건만 아직도 그를 얽어매고 있는 그 긴장은 무엇인가. 그의 가슴 속에 묻혀 있는 말들이 아마도 그가 순례한 산하의 역사 속에 묻혀 있는 사연만큼 깊은 것 같아 감히 뒷 장을 열어가자니 마음이 떨렸다.
이 책은 우리를 다시 한번 놀라게 하는 네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저자의 문체에서 물씬 풍겨나오는 그의 예리한 역사의 이해와 함께 우리의 가슴속을 저미고 들어오는 차가운 이성의 멋이다. 그의 글은 그냥 글이 아니다. 금방 우리의 머리 속에 들어와서 살아 있는 생명체가 되어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간다. 둘째는 그의 말대로 「글에 못다 담은 것을 보충」하려고 직접 그려 넣은 그림들이다. 저자의 그림은 그의 글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힘으로 우리의 눈을 붙들어 놓는다. 색채와 선과 구도가 만들어 놓은 조화는 정말 새로운 감동을 준다. 셋째는 저자가 주제를 정하고 찾아갔던 곳의 풍경사진이다. 그런데 사진이 갖는 마력은 또다시 그의 글로 우리를 이끌어 다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그리고 우리가 미처 느껴보지 못했던 절묘한 감흥을 주고 있다. 넷째는 이 책의 편집에서 맛볼 수 있는 여백의 가치이다. 그 여백은 그냥 빈 공간이 아니고 저자가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말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여백들은 우리의 마음을 다스려 다시 성찰할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책에서 우리의 역사가 옛날 그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숱한 사건 속에서도 생명의 핏줄이 움직이듯이 여전히 하나의 맥을 이어 오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것은 저자가 의식적으로 대비하고 있는 것들, 예를 들어 「반구정과 압구정」, 「백담사의 만해와 일해」, 「한산섬의 충무공과 광화문의 충무공」 등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 시대의 지혜를 찾는 사람들이라면, 역사의 진리를 맛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지금 글줄이라도 읽어보겠다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읽지 않고서는 무슨 말도 해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역사의 맥박에 귀를 대고 자연의 숨소리로 적어간 「나무」의 글이기 때문이다.<이재정 성공회대 총장>이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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