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사랑을 위한 3중주로 기억되길/“극적 줄거리보다 세 주인공 내면창조 주안/독자와의 만남 늘 기쁜 일 이젠 이별할 때”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 하였는데 소설 「사랑의 기쁨」을 시작한 것이 어제인 듯 싶지만 벌써 2년에 가까운 500회가 되어 끝이 나게 되었습니다.
며칠전 모교인 연세대에 들러 숲길을 거닐다가 해마다의 가을이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황홀한 단풍을 보면서 문득 저처럼 아름다운 단풍을 보니 나이를 들어간다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마음의 위안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껏 수많은 작품을 써 왔으면서도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고 끝나는 것이 마치 해마다 맞는 계절이면서도 오늘의 가을이 각별한 의미를 지닌 것처럼 새삼스럽게 가슴 저린 느낌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현대 소설을 쓰면서 저는 몇가지 원칙을 작가의 말을 통해 쓴적이 있습니다. 우선 소설의 원형에 충실한 작품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고전주의」 작품을 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예전에 흔히 쓰던 주인공들의 드라마틱한 갈등과 극적인 구성에 대한 인위적인 줄거리엔 더 이상 관심이 없고 그저 엄마와 딸, 그리고 엄마가 평생을 통해 사랑했던 한 남자, 이렇게 세사람이 이루어가는 내면의 세계를 현악 3중주의 실내악과 같은 작품으로 쓰고 싶었습니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저는 「왕도의 비밀」을 다큐멘터리화하느라고 오랫동안 중국을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악전고투의 여행 중 단 한회도 펑크내지 않고 연재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와서 생각하면 기적과도 같습니다.
소설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는 일은 늘 기쁜 일이었습니다. 특히 제 소설을 거의 읽지 않던 아내가 아침마다 신문에서 「사랑의 기쁨」을 찾아 읽는 모습을 몰래 훔쳐보면서 저는 작가란 참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구나, 소설의 공간에서도 아내를 만날 수 있으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내는 최현민을 사랑하면서도 딸 채희 때문에 자신의 행복을 포기한 유진의 모습이 같은 여성으로 참 아름답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비난도 많이 받았습니다. 너무나 같은 말, 같은 생각, 같은 문장들이 중복되어 나오고 있다는 날카로운 지적이었는데 이 부분은 저도 인정합니다. 연재의 특성상 끊임없이 독자들의 기억을 환기시켜줘야 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상당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부분은 단행본으로 출간될 때 모두 빼낼 것입니다.
이제 헤어질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의 소설이 끝나면 모든 사람들과의 이별입니다. 가을이 오면 낙엽이 떨어져 땅 위를 덮고, 위대했던 지난 여름도 다 흘러간 과거가 되어버리듯 독자와의 만남도 악필의 원고를 인내하고 정리해 준 담당기자와의 우정도 그리고 제가 창조했던 장유진, 최현민, 김채희와의 만남도 이별입니다. 그러나 낙엽이 떨어지고 헐벗은 벌거숭이의 나무가 되어야만 신생의 봄이 오듯이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의 시작인 것입니다.
소설을 통해 만났던 수많은 독자들에게 엄마의 이름으로 최현민에게 쓴 채희의 마지막 편지를 빌어 작별인사를 보냅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사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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