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제재 6년 생필품값 천정부지/알라신·후세인 대통령 국가파탄 정신적 버팀목/석유수출길 막혀 휘발유 1ℓ 1원90년 걸프전이후 이라크는 서방보도진에게는 금단의 땅으로 간주돼 왔다. 이라크 정부가 서방기자들을 통한 자국의 각종 정보 유출을 우려, 출입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지난 6년간 유엔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이라크를 본지 국제부 이장훈 특파원이 10월 21∼30일 방문, 그 실상을 취재했다. 두차례에 걸쳐 이라크의 오늘을 알린다.<편집자 주>편집자>
휘발유 1ℓ 1.5디나르(원화 1원), 사과 1㎏5백디나르, 비누 1장 1천디나르. 전세계에서 가장 불합리한 가격체계가 존재하는 나라가 바로 이라크다. 걸프전을 도발한 대가로 지난 6년간 유엔의 제재를 받아온 이라크는 이처럼 어처구니 없는 경제상황속에서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다. 비누 설탕 소금 등 생필품들은 천정부지로 값이 뛰고 있고 농산물들은 정부의 통제에 묶여 겨우 최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석유를 전혀 수출하지 못해 휘발유 등은 공짜나 다름없다. 대학교수나 고급공무원들의 한달 평균 임금이 5천디나르 밖에 되지 않는 점에 비추어 보통사람들은 어떻게 하루하루를 연명해가는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이라크정부가 생필품 8개 품목을 정해 배급제를 하고 있으나 국민에게는 여전히 갈증을 안겨주고 있다. 때문에 이라크인들의 인내는 이제 한계상황에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수도 바그다드의 길거리에는 아예 학교를 가지 않고 좌판에다 담배나 신문 등을 파는 어린학생들이 쉽게 발견된다. 웬만한 직장인들은 봉급만으로 도저히 살 수 없어 밤에는 팁을 받기 위해 외국인들이 묵는 호텔의 경비원이나 식당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집에 있던 가전제품이나 가구 등을 내다 팔기도 한다. 과학자나 교수 등 지식층들은 기회만 생기면 외국으로 빠져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병원이나 학교 등은 마치 피난민 수용소를 방불케한다. 바그다드 사담가의 알 카디시아병원에는 하루 1천여명의 환자가 찾아오고 있으나 이들을 치료할 약품도 수술장비 등도 없다. 이 병원 인큐베이터 10개중 2개만이 제대로 작동될 뿐이다. 살만 노이 주와트 병원장(53)은 『한달 평균 5세이하 유아가 이 병원에서만 6∼7명씩 사망한다』며 『항생제를 비롯한 각종 의약품과 수술기구, 장비 등이 턱없이 부족해 아예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외국에서 공부하는 등 다른 아랍국가들에 비해 우수하다는 말을 듣고 있는 이라크 의료진들은 약품부족과 새로운 장비 및 부품들이 공급되지 않아 민간요법을 개발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엔경제제재이후 지난 6년간 유아사망자가 75만여명에 이르고 있다는 통계가 이라크의 사정을 그대로 웅변하고 있다. 초등학교 등 각종 학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사우라트 알 애슈리(20세기 혁명)라는 이름의 초등학교는 학생수가 9백20명이지만 점심을 먹는 학생은 하나도 없다. 공책과 연필 등 필기도구는 물론 교과서도 없다. 유리창중 성한 것이 하나도 없지만 갈아 끼울 유리가 없어 그냥 깨진 채로다. 압둘레마 자바르 교장(44)은 『학생들이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여건이 전혀 안됐고 교사들도 박봉으로 대부분 사직해 교육을 전혀 할 수 없다』고 한숨을 지었다.
어려운 사정은 의료나 교육분야만이 아니다. 통신시설이 모두 망가져 외국과의 국제전화가 전혀 안되고 국내 전화도 연결되기가 쉽지 않다. 상하수도 처리가 제대로 안돼 바그다드 교외에만 가도 한국의 과거 난지도를 방불케한다. 쓰레기더미에서 양들이 먹을 것을 찾는 희한한 모습도 볼 수 있다.
바그다드 시내를 걸어다니면 눈이 따갑고 호흡이 곤란할 정도다. 1백여만대의 차들이 대부분 고물인데다 부품수입이 전혀 안돼 매연이 엄청나게 나오기 때문이다. 미군의 폭격으로 발전소가 파괴돼 충분한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데다 정전사고도 잦다. 한낮 섭씨 40∼50도의 날씨에도 냉방장치가 가동되지 않을 때가 많다.
국가가 파탄지경에 빠졌는데도 버틸 수 있는 것은 사담 후세인 대통령과 알라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국민은 말한다. 바그다드 시내 곳곳에는 후세인의 초상화와 동상 등이 이슬람 사원보다 훨씬 자주 눈에 띈다. 문맹퇴치와 일부 일처제를 실시한 후세인은 비록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지는 못하지만 그를 대신할 만한 지도자가 없다는 공감대가 국민들 사이에 퍼져 있다. 아랍의 1등민족임을 자부하는 이라크 국민 대부분은 후세인이 미국과의 대결에서 승리할 것으로 믿고 있다. 국민은 이같은 자존심에도 불구, 언제 유엔의 제재가 해제될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80년대 중동국가중 가장 부자 나라중 하나였으며 국민 1인당 소득이 5천달러였던 이라크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석유 매장량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유엔제재만 풀린다면 이 석유를 수출해 다시 아랍의 맹주가 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그러나 인샬라(신의 뜻)만을 외치고 있는 이라크인들의 목소리는 어쩐지 공허하게 들리는 것같았다.<이장훈 특파원>이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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