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버스 업자들이 수백억원의 운송수입금을 빼돌리고, 관련공무원들이 뇌물을 받고 요금 올리고 노선도 조정해 줬다는 보도에 시민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이다.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었다는 20세기 말에, 그것도 개혁기치를 드높인 문민시대에 50∼60년대 혼란기에나 있을 법한 무지막지한 비리가 횡행했다니 시민 모두가 농락당한 기분이다. 검찰과 국세청은 버스업계의 숙환을 들어낸다는 자세로 수사 또는 조사에 임해 주기 바란다.업자들의 적자타령에 동정의 염을 품었던 것도 사실이기에 더욱 배신당한 느낌이다. 93년 이후 네 차례 평균 17.6%의 요금이 오를 때마다 이를 용허하고 서울시가 업자들에게 갖가지 행정·재정적 지원을 해주는 것도 당연한 지원행정이라고 여겨온 것은 적자타령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업자들은 매일같이 장부조작으로 수입금을 빼돌려 부동산 투기하고 사채놀이 하면서도 적자를 조작, 떼 쓰듯 요금인상을 요구했다. 요금을 올릴 때마다 반복하던 서비스 개선약속은 공염불에 그쳤고, 그 결과 서울 시내버스가 세계에서 가장 불편하고 위험하고 불쾌한 버스로 지탄을 받아왔다.
이익을 떼먹지 않고 시설투자와 사원복지 향상에 썼다면 모든 버스회사들이 지금같은 후진성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선 운전사들에게 무리한 운행시간 준수를 강요하지 않아도 좋을 터이니 교통법규를 어겨 가면서 난폭하게 운전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것만 해도 서비스 개선약속의 반은 이뤄질 수 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업자들의 작용 때문에 굴곡노선 직선화 같은 오랜 시민숙원이 묵살돼 왔다는 사실이다. 지하철은 나날이 늘어나는 데도 중심가 요지마다 구불구불 돌아가는 황금노선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뇌물」때문이었던 셈이다. 주민들이야 골탕을 먹건 말건 적자노선은 뇌물을 써가면서 폐지시켰다. 올린 요금을 다시 내려야 한다는 분노에 찬 소리가 터져나오는 것도 당연한 반응이라 하겠다.
직업 공무원으로서는 최고직위인 1급 공무원까지 뇌물 준 업자의 입김에 놀아나고 물가당국과 시민에게 요금인상의 「당위성」을 강변해 온 것은 논평의 가치조차 없는 배신행위다.
이 기회에 서울시는 시민의 분노와 불편해소에 바탕한 교통정책을 밀고나가야 한다. 시민단체와 관련학계에서 제안하는 공동배차·공동운영 방안도 더욱 연구 발전시키고, 버스회사 운영의 투명성 보장을 위해 현금승차제는 가급적 억제하고 버스카드제를 전면시행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이에 덧붙여 뇌물로 왜곡된 굴곡노선부터 직선화하고 뇌물관련 회사에 대한 행정지원을 끊는 벌칙을 가함으로써 버스업계에 경각심을 울려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