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이제 우리 문화도 갈데까지 간 느낌이다. 인문주의의 총체적 위기로 일컬어지는 90년대 문화의 지리멸렬현상은 열음사의 출판사 등록 취소와 장정일의 소설 포르노 시비로 막장을 향해 치닫고 있다.인문주의의 궤멸은 연극의 메카 대학로에 가면 더욱 분명해진다. 성인연극을 표방한 포르노 행위와 배설의 미학을 구가하는 세태 풍자극에 관객이 몰린다. 벗기고 웃기고 질펀하게 놀다 간 자리에 남는 것은 일회용 마취제 껍질같은 언어의 쓰레기더미 뿐이다.
왜 이지경이 되었는가? 혹자는 대중제일주의적인 세상을 탓하지만 결국 이땅에서 문화를 논하는 자들의 짧은 안목과 정신성 결여로 진단할 수 밖에 없다.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하면서 지나치게 빠르게 세상의 흐름을 따라갔던 예술가들, 그리고 문화에 대한 묵직한 자기 원리와 미래에 대한 장기적 안목도 없이 끊임없이 화제거리를 찾고 얄팍한 문제작을 만들어내야 했던 비평가와 저널리스트들. 결국 이들의 세상에 대한 긴장의 와해, 성급한 화해의식이 90년대 문화를 마지막 놀이-포르노판이 되도록 내버려둔 셈이다.
열음사의 문학잡지 「문학정신」은 90년대 초반 새로운 세계를 수용하는 해체적 담론을 내세웠다. 젊은 필진 구성과 새로운 편집체제로 신선한 충격을 제공했던 출판사가 외설 출판으로 문을 닫았다.
장정일은 포르노 비디오를 보면서 그대로 소설로 베껴 써도 결코 포르노가 되지 않는 문학적 상상력을 갖춘 작가이다. 시, 소설, 희곡, 비평에 이르기까지 그의 감수성과 해박함은 100년에 하나 나올만한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열음사와 장정일이 포르노 시비에 휘말렸다면, 열음사와 장정일의 세계를 이해하고 받쳐줄 문학적 담론이 준비되지 않은 탓이거나, 열음사와 장정일 자신들의 어쩔 수 없는 세태와의 야합 탓일 것이다.
그만큼 지금 우리 사회는 대중제일주의적인 유행병에 시달린다. 독자와 관객에게 외면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예술가들을 마지막 놀이에 빠져들게 하고 결국 쓰레기로 만든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 우리들 스스로 잃어버린 「문학정신」을 되찾아야 한다. 문득 이런 시 구절이 생각난다.
<이제 세상에 등 돌리고 검은 식빵을 씹으며 클래식을 듣고 싶다> <이윤택 시인·극작연출가>이윤택>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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