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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임동창 피아노 치네」(음악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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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임동창 피아노 치네」(음악노트)

입력
1996.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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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달, 문화의 날이 지나간다. 이는 특별히 문화를 강조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 뿌리내리기를 바라는 과도적 조치라 하겠다. 때문에 머지않아 이같은 「강조어법」이 쓰이지 않도록 하루속히 문화여건이 성숙돼야 하겠다. 자칫 구호나 전시성으로 문화가 흐를 경우 문화는 「껍데기 문화」란 탈을 쓴 채 외면당하고 말기 때문이다.그러나 지난 25일 첫 개원한 서울 서대문 「문화의 집」은 구체적 표현이란 점에서 방향이 주목된다. 필자는 오래 전에 아파트 건축에 이를 제도화, 의무화하자는 내용의 글을 쓴 바 있다. 지역 문화공간의 필요성을 문체부나 문화 관련 예술가들만이 아닌 집을 만드는 사업주도 인식해야 한다는 뜻에서다.

아울러 넘치는 예술인력들이 명색 내기 좋은 대공연장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지역공간을 문화의 숲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우선해 주어야 결실을 거둘 수 있다. 따라서 공간 부족만을 외칠 일이 아니다. 수많은 교회가 있고 문예회관 구민회관이 있다.

그러나 예산부족, 기획력 부재로 텅 빈 채 방관만 하고 있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집 늘리는 것 못지않게 그 방을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집주인이 쌓아야 할 문화덕목이다.

그렇지않고 지금처럼 공연장이 「음악 예식장화」해서 교수, 강사의 실적 쌓기에만 쓰인다면 방이 많으면 많을수록 청중 소외도 늘어난다.

지체부자유아를 위한 센터 건립 기금 음악회에서 만난 한 청중은 음악가들이 스타 의식에 사로잡혀 청중을 내려다만 볼 것이 아니라 음악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서든지 장소를 불문하고 위안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대다수 향유자의 입장을 대변해주었다.

이에 답이라도 하듯 지난 17∼19일 한 작은 홀에서 열린 「그냥 임동창 피아노 치네」는 신선하기 이를데 없는, 진정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음악회였다. 선문답 같은 콘서트 제목은 바로 이 사회 껍데기 문화행위에 던지는 화두로 비쳤다. 필자는 그 흔한 팸플릿조차 없이도 피아노 연주회에서 「기차 박수」로 환호하는 청중을 만날 수 있었다.

임동창은 「피아니스트」란 이름과 「독주회」란 이름 뒤에 숨은 음악사회의 이중적 구조를 날카롭게 간파하고 있는듯 했다. 그의 창작음악 세계는 구도적 자세여서 바로 21세기 한국음악 세계화의 에너지원처럼 느껴졌다.

이 땅에 진정으로 「열린 음악회」를 하고 있는 한 연주가가 어딘가 숨어있다는 기쁨, 그것은 음악 본질에 충실한 예술의 구원과 믿음처럼 느껴졌다.

「그냥 임동창 피아노 치네」처럼 매일 음악이 즐거워 「그냥 피아노 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이런 사람들이 문화의 주인이 되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탁계석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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