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제연·사운연 5년동안 수집작업/1만 3,000장 분량 「사료총서」 30권 결실/동학군 활동·향토사회 동태 등 첫 공개자료 많아동학농민전쟁의 전모를 알려주는 방대한 분량의 1차 자료집이 출간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역사문제연구소(소장 이리화)와 사운연구소(소장 이종학)는 최근 국내외에 흩어진 동학전쟁 관련 기초사료들을 집대성, 영인본 「동학농민전쟁사료총서」(전 30권)를 펴냈다. 92년 9월부터 시작된 사료수집작업이 5년만에 결실을 거둔 것이다. 동학농민전쟁 당시 한국·일본의 정부문서, 신문자료 등 모두 164종, 1만3,000여장 분량을 영인한 이 사료집은 ▲1부(1∼6권) 농민전쟁의 전체상황 ▲2부(7∼12권) 2차 농민전쟁 관련 지역사료 ▲3부(13∼18권) 우리정부측 기록 ▲4부(19∼25권) 일본 외무성 관계사료 ▲부록(26∼30권)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중 상당 부분은 처음 공개되는 것들로 동학군의 면면과 활동내용, 일본군의 동정과 전투상황 등을 소상히 알려주고 있다.
9권에 실린 대교 김씨 가문의 「갑오피란록」은 김씨 일족이 1894년 7월부터 1895년 3월까지 9개월간의 피란기간중 겪은 경험담을 기록한 것으로 온양 당진 등 충청도 서부지역 동학농민군의 활동상황과 향촌사회의 동태를 전해준다. 이자료는 1894년 11월경 동학군이 일본군과 관군의 역습으로 세력이 약화되자 도처에서 유림양반들이 중심이 된 유회소가 설치됐으며, 심지어 동학에 가담했던 인물들도 이곳에 회유돼 동학군을 체포, 처단하는데 앞장섰던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자료는 또 박덕칠 박도일 이창구 손사문 안교선 황하일 등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이지역 동학지도자들의 이름을 다수 거명하고 있다.
척사파 유림계열인 김영식(1849∼1924)이 쓴 「사정일기」는 1894년 당시 평안도 지방의 상황을 알려주는 최초의 자료로 평가된다. 이 문집은 청일전쟁의 여파로 평안도 일대의 마을들이 피폐화하고 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대규모 피란을 떠나는 바람에 농민군이 조직적으로 궐기하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전라도 남원 유생 김재홍이 쓴 「영상일기」에는 농민집회가 충청도 보은, 전라도 금구 외에 경상도 밀양에서도 열렸다고 기록돼 있어 농민집회가 충청 전라 경상도 등 삼남지방 전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음을 알려준다.
당시 「동경일일신문」 「동경조일신문」 등 일본에서 발행된 신문들은 그동안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동학지도자들의 체포 이후의 행적들에 대해 상세히 보도하고 있어 주목된다. 특히 요미우리(독매)신문 1895년 5월6일자에는 녹두장군 전봉준(1855∼1895)의 사형집행 날짜와 장소 등이 정확히 기록돼 있다. 이신문은 「전봉준(봉의 오기) 처결」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동학당) 당수인 전봉준은… 사형을 선고받아 4월24일 상오 2시경 대묘전(현재의 종묘)의 좌감옥서의 교수대에서 처형됐다』고 적고 있다.<변형섭 기자>변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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