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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소설 회수·파기 파문/「내게 거짓말을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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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소설 회수·파기 파문/「내게 거짓말을 해봐」

입력
1996.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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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 “음란성 물의 수용” 전격결정/출판사 “우리사회 아직 포용력 부족”소설가 장정일씨(34)가 이달 초에 낸 장편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 대해 음란성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책을 낸 도서출판 김영사(대표 박은주)가 절판과 함께 시중에 배포된 책을 모두 회수하기로 결정, 일대 파문이 일고 있다.

김영사 김영범 상무는 『사회단체의 비난이 쇄도하는 등 작품이 출판 때 의도했던 것과 달리 해석되어 물의를 빚어 시중의 책을 회수, 파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인쇄필름도 파기하기로 결정했으나 나중에 자료의 필요성이 생길 때를 대비해 일단 보관할 생각』이라며 『사내에 보관하던 720권은 모두 없애고 초판 1만권 가운데 이미 서점에 나간 책은 회수되는대로 모두 파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에 있는 작가 장씨에게 전화통화로 「작품 파기결정」을 알렸다는 김상무는 『장씨가 「나의 작품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출판사에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한국사회가 이런 류의 작품을 가볍게 수용할 분위기가 아닌 것 같다』고 결론지었다.

출판사의 작품 회수·파기결정에 따라 현재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진행 중인 이 소설에 대한 심의도 무의미하게 됐다. 이로써 92년 유죄판결이 난 마광수씨의 「즐거운 사라」 사태 이후 처음 불거진 국내 소설 음란성 시비는 여론에 밀린 출판사의 꼬리내리기로 일단락됐다.

이번 파문은 마씨때와 비슷하면서도 출판사의 반응이 사뭇 달라 주목된다. 청하출판사가 이른바 「표현의 자유 보장」이라는 일관된 주장을 인신구속까지 감수하면서 밀고 나간 반면 김영사는 출판 직후부터 여론의 동향에 전전긍긍했다. 김영사의 결정에 대해 한 문학평론가는 『「즐거운 사라」의 경우와 최근 출판사 등록을 취소당한 열음사의 전례가 김영사를 위축시켰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그는 『전례를 통해 음란성 짙은 소설에 대한 사회적 반응이 어떨 것인지 충분히 알 수 있을 출판사가 일단 출판했다가 여론에 밀려 바로 작품을 파기하는 것은 일관성없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다양한 문학실험을 수용하기보다는 수익에 몰두하는 상업출판의 행태로 해석하는 지적도 있다. 번역출판한 소설의 음란성문제로 최근 출판사등록을 취소 당한 열음사가 이에 불복, 소송을 제기하는 모습도 김영사의 경우와 대비된다. 항의서명작업을 벌이는 열음사는 일주일 사이에 황현산 고려대 교수, 문학평론가 황병하씨 등 문학인 300여명이 서명했다고 밝혔다.

◎어떤 내용의 소설이길래/중년 예술가와 고3 여학생/변태적 성행위 기둥줄거리

문제가 된 장정일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아내를 파리에 유학보낸 후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혼자 살고 있는 중년의 전직 조각가 제이가 고3 여학생 와이와 정사를 벌이는 것이 기둥 줄거리이다. 와이의 큰언니는 강간을 당한 후 자살했고, 작은 언니는 자신을 강간한 사람과 결혼해 브라질로 이민갔다. 와이는 강간당하기 전에 자기 의지에 의해 순결을 잃겠다는 생각으로 유명인사인 제이에게 전화를 걸고 섹스를 약속한다.

둘은 경북 안동의 역근처 허름한 여관에서 첫 정사를 치르고, 이후 안동과 대구 등을 전전하며 섹스를 즐긴다. 둘은 변태적인 성행위를 일삼으며, 특히 제이는 대걸레 자루와 허리띠로 와이를 때리는 등 가학적 성행위에 탐닉한다. 고3 여학생인 와이도 제이의 행위를 반긴다. 와이는 결국 브라질에 정착해 SM(사디스트 & 매저키스트)클럽에서 일하게 된다.

◎음대협 어떻게 대응했나/포르노물로 규정 폐기 요청/납득조치 없을땐 불매 불사

33개 시민·종교·사회단체 협의체인 음란폭력성조장매체대책시민협의회(음대협·공동대표 손봉호 등)는 26일 김영사에 항의문을 보내고 이 소설의 즉각적인 회수 및 폐기등을 요청했다. 음대협은 모니터 결과 『이 소설이 전체의 80%에 걸쳐 성행위를 묘사하고 성기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할 뿐아니라 가학성 피학성 변태행위 등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 성행위들을 여과없이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완전 포르노물』이라며 『돈벌이에 급급해서 이같은 음란 저질 출판물을 제작 판매하는 것은 기업의 사회적책임을 망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음대협은 김영사측에 ▲대국민 공개사과 ▲발행된 음란소설의 즉각적인 회수 및 폐기 ▲음란소설 판매로 얻은 수익금전체를 청소년기금으로 사용할 것 등을 촉구했다. 음대협은 출판사측이 납득할만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김영사가 발행하는 모든 도서에 대해 불매운동을 전개하고 관할 행정기관에 출판등록취소 요청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김범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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