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쉬운 시어에 담아낸 깊은 한국적 정서 “영롱”「산새도 오리나무/우에서 운다」로 시작되는 소월의 「산」을, 나는 60대의 중턱에 접어든 지금도 끝절까지 달달 외우고 있는데, 이게 정확히 언제적부터였는지 딱히 기억이 안난다. 소월의 시를 처음 대했던 것이 광복 직후 내 나이 열너댓 살 때였으니까, 그때부터였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한창 나이 서른세 살에 처가동네인 구성에서 자살로 이승을 하직한 소월. 그 사람을 나는 일제 식민지 속을 그이다운 시심으로 감기 앓듯이 노상 앓았던 시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가령 신채호 같은 사람의 성향은 일제와 정면으로 맞서 송두리째 온 몸을 내던져 꺾어졌던 투사형이라면, 소월은 도쿄대 상과대학에 응시했다가 낙방한 뒤 불과 20세 전후부터 어느 한 군데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공책 하나와 연필 꽁다리를 들고 노상 시 같은 것이나 끄적거리고 묘향산 앞의 고향 근처 산야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식민지」를 감기 앓듯이 혼자서 앓았던 것이었다. 바로 그것이 소월의 시심이었다. 그래서 시마다 그렇게 슬프고 그다지도 절실하고 사무치게 간절하다.
내가 특히 이 「산」을 좋아하는 이유 한 가지를 든다면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의 구이다. 어린 열네 살 때도 이렇게도 쉬울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연의 「눈은 나리네, 와서 덮이네」도 그렇다. 너무너무 쉽다. 그래서 실은 어려운 점도 있다. 진짜배기 소월론이 평론으로서 흔하지 않은 이유도 바로 이 점에 있을 것이다. 너무너무 쉽기 때문에 그런 시에 대한 평론을 쓰기는 너무너무 어려울 것이다.
나는 어릴 때 농촌에서 자라서 그 정경을 선연하게 알고 있다.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 그렇다! 나는 이 정경을 너무너무 잘 안다. 이 시를 처음 접했던 열너댓 살 때부터 나는 이 대목에서 혼자 무릎을 쳤던 것이다. 어느 음력 설날이었다. 마악 떠오른 아침 햇살이 동네 안에 퍼질 무렵에 누나랑 나는 세뱃길에 나섰다. 동네 안 길은 금방 떠오른 햇살에 녹아 벌써 질척질척해지기 시작하고 있었고, 등때기가 따끈따끈해 왔다. 누나와 나는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으려고 서로 손을 잡고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누나의 웃음소리가 영롱하였다. 그 순간 왼쪽 깊은 산 쪽으로 무심히 눈길을 주었던 나는 소스라치듯이 놀랐다. 그 높은 산에는 안개가 자욱한 속에 펑펑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 광경은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그 깊은 맛을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 아아 바로 이거였다. 나는 열너댓 살 그때 이미 이 시구를 읽으며 혼자 생각했던 것이었다. 아아, 이거 이거, 나는 잘 안다.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산새도 오리나무/우에서 운다/삼수갑산 가는 길은 고개의 길」. 이 이상 우리네 한국적 정서를 깊이 담아낸 시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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