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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6.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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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친 러시아대통령에 의해 국가안보위원회 서기직에서 축출된 바로 다음날 밤 레베드는 톨스토이의 연극 「이반 뇌제의 죽음」을 감상하기 위해 모스크바시내 한 극장에 나타났다. 순간 객석에서 터져나온 우뢰 같은 박수가 그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고 외신은 전한다. ◆세살 때인 1533년 제위에 올라 54세로 죽기까지 이반4세의 재위 50년간 러시아인은 사상 유례 없는 공포의 시대를 살았다. 어린시절 호랑이 같은 귀족들의 틈바구니에서 끊임없이 생명을 위협당하며 성장한 그는 왕권을 지키기 위해 반역의 낌새가 보이는 자는 가차없이 처단했다. 뇌제라는 별칭은 그래서 붙었다. ◆이 절대왕권은 그의 죽음과 함께 몰락하고 그 후유증으로 한동안 대 동란의 시대가 계속됐다. 연극을 보고 나온 레베드는 『바로 지금의 러시아 그대로다』라고 말했다. 고르바초프를 쓰러뜨리고 집권한 후 제정시대 못지않은 강권통치로 군림하던 옐친의 와병으로 러시아의 장래는 지금 장기간의 혼란을 예고하고 있다. ◆옐친은 레베드를 해임하면서 이를 러시아의 우화에 비유했다고 한다. 백조와 새우와 물고기가 짐을 함께 지고 가게 됐는데 아무리 힘을 써도 짐이 움직이지 않았다. 백조는 하늘로 날고 새우는 뒤로만 움직이고 물고기는 자꾸만 짐을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백조는 러시아 말로 레베드라고 발음된다. ◆그 레베드를 제거해서 러시아라는 짐이 잘 움직인다면 좋겠지만 실정은 만만치 않은 것 같다. 나라를 누가 이끌어가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처럼 큰 나라에서 체제변혁기에 겹친 통치권 부재현상은 단시간내에 수습될 일이 아니다. 우리의 대러시아외교도 이같은 불가측성으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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