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호 전 국방장관 비리의혹 사건은 이제 사법처리 절차를 남기고 있다. 그러나 그 절차가 어떤 성질의 것이든, 굳이 처리결과를 기다릴 것도 없이 이미 국민 누구나 상식 수준에서 알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가 시인한 인사청탁 메모와 군사장비 조달계획 메모만으로도 그는 한 나라의 국방장관으로서 차마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일을 저지른 것이다.우리의 관심은 그 물증이 구체적으로 유무죄를 입증하는데 얼마나 유효한가를 가리는 데 있지 않다. 이씨 개인이 얼마나 큰 벌을 받느냐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도대체 어떻게 돼서 군 수뇌의 도덕적 수준과 정신자세가 여기까지 이르렀느냐는 점을 밝히는 일이 국민의 관심사라고 우리는 믿는다. 군 인사제도와 군사장비 획득체계가 어떻게 운영돼 왔기에 국방장관이 일개 무기상에게 약점을 잡혀 몇년 동안이나 끌려다닐 지경이 됐는지 그 시스템상의 비리를 논의함으로써 앞으로의 교훈으로 삼자는 것이다.
우리 군의 현행 군사장비 조달체계는 장비획득업무를 담당하는 실무자가 무기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지 못하고 있는 데에 구조적 맹점이 있다고 군사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그러니 무기상의 설명이 필요하고 여기에 뇌물과 유혹이 개재할 틈새가 벌어져 있다.
또 국제 안보환경과 선진 각국의 무기개발은 급속도로 변화하는데 지금 우리 군의 무기획득 시스템은 계획수립에서 구매까지 5년 단위로 운영되기 때문에 구식 장비를 구매하게 될 위험도 있다. 이 때문에 군 수뇌부의 결재권자가 마지막 구매단계에서 수시로 계획을 변경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이 비리의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군은 이 전장관의 유죄가 입증되더라도 그것은 그 개인의 일이며, 군 전체로 논의를 확대하는 것은 비약이라고 항변한다. 군의 명예를 훼손하고 장병의 사기를 저해하는 일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은 다르다. 군은 자기희생을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로운 것이고 명예로운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다른 어떤 조직보다 청렴한 복무자세가 요구되며, 군의 참다운 사기는 이처럼 유혹을 이겨내고 스스로 정의로움을 자부할 수 있을 때 우러나온다.
이번 사건을 이씨 개인비리 차원을 떠나 조직상의 비리로 보고 그 원인을 찾아 개선책을 마련하는 계기로 삼자는 우리의 주장은 바로 군이 걱정하는 장병의 사기와 군의 명예를 위한 일인 것이다. 이 기회에 군의 고질적 병폐로 일반에게 인식돼 온 인사·군수비리가 척결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국가적으로 다행일 수 있다. 행·불행을 가르는 것은 운명이 아니라 과거의 실패를 교훈삼아 기회를 선용하려는 인간의 의지라고 우리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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