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유학중 수집 결심… 사설박물관 건립/「훈민정음」 원본 등 국보급 다수 매입 소장간송 전형필은 우리나라 문화재 수집과 보전의 선각자이다. 그는 1906년 서울 종로일대의 상권을 장악한 10만석 부호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휘문고보시절에는 영랑 김윤식 월탄 박종화 등과 교우하며 문학과 음악에 심취했다. 일본 와세다(조도전)대 법대생이던 21세때 조선의 고미술품이 일본으로 대량유입되는 것을 보고 문화적 항일을 결심했다. 귀국 후 간송은 선친의 재력을 바탕으로 고미술품 수집에 나섰다.
1937년에는 도쿄(동경)에 있던 영국인 변호사 존 갯스비가 소장하고 있던 국보급 고려청자컬렉션을 한꺼번에 사오는 행운도 잡았다.
이렇게 해서 이듬해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박물관인 「보화각」(현 간송미술관의 전신)을 세워 문화재의 정수를 방대하게 소장하고 이를 연구 복원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했다.
간송에게 미술품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이는 동양화가 고희동과 33인중의 한명인 오세창으로 알려졌다. 간송의 고미술품 수집에 얽힌 일화는 전설처럼 내려온다.
31세때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에서 현재 보물241호인 「청화백자양각진사철채란국초충문병」을 거금 1만5,000원에 사들였다. 당시 군수월급이 70원이었던 만큼 문화재에 대한 간송의 애착이 어느정도인지 알 수 있다.
국보 제70호인 「훈민정음」 원본은 기와집 열채값인 1만원에 구입했다. 간송의 고미술품 사랑은 다른 수집가들의 그것과 달리 개인적인 소장에 그치지 않고 만대에 물려 보전하겠다는 민족의식에서 비롯된다.
그는 따뜻한 품성을 지닌 휴머니스트로 서예와 문인화에도 뛰어난 재주가 있었다. 1940년에는 보성중·고교 재단인 동성학원을 설립하는 등 육영사업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이다 62년 숙환으로 타계했다.<변형섭 기자>변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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