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진영 핵심 거물급 화교/아시아계,미 주류사회 ‘높은 벽’ 못넘고 끝내 추락미 대선에서 민주당 빌 클린턴 대통령 진영에 400만달러 이상의 아시아계 자금을 주선, 「아시아 커넥션」의 핵으로 떠올랐던 존 황(46)이 법정에 서게 됐다.
민간 사법감시단이 존 황에게 외국인 정치헌금 관련자료를 요청했다가 성과가 없자 그를 정보자유법 위반혐의로 고소, 연방법원이 그를 소환하기로 한 것이다.
존 황은 18일까지만 해도 민주당재정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클린턴대통령의 선거운동 진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화교인 그는 클린턴 대통령의 정치적 성공과 궤를 같이 하며 미국내에서 아시아계 거물급으로 부상해 왔다. 인도네시아 리포그룹의 아메리카 현지법인대표로 있다가 클린턴 대통령과의 친분관계로 일약 상무부 부차관보로 자리를 옮겼으며 올 1월엔 선거라는 중대사를 앞두고 민주당 고위직으로 일해왔다.
이렇듯 승승장구하던 그가 갑자기 정치헌금파문이 불거져나와 확산되는 바람에 부위원장 자리를 그만둬야 했으며 법정에까지 나가야 하는 처지가 됐다.
최근 미국내에서 문제가 된 리포그룹 관련자의 45만달러 기부, 한국 청암아메리카의 25만달러 기부, LA근교 불교사원에서의 14만달러 모금 등 굵직한 정치헌금들이 모두 그가 주선한 것들이다.
존 황은 당초 비즈니스맨으로 출발했다. 78년 아칸소에서 금융업을 하던 리포그룹의 아메리카 현지법인 대표로 일을 시작했으나 비즈니스맨으로서는 특별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러다 리포그룹 2세인 제임스 리아디가 당시 아칸소주지사이던 클린턴 대통령과 교분을 틀 때 정치적인 방면에서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는 급기야 92년의 대선에서 클린턴 진영이 정치헌금을 모으는 데 적극 나섰다. 특히 화교출신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변방에서 돈만 벌어서는 한계가 있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정계 핵심부와 연결을 해야 한다』고 역설, 많은 중국계 헌금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그의 상무부 부차관보 시절은 매우 불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 담당차관보였지만 주요 회의에 제대로 한번 참석도 못하는 등 아시아관련 정책에서 철저히 배제됐다는 것이다. 헌금주선의 적법성여부를 떠나 이번에도 그는 미국주류사회의 높은 벽을 새삼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워싱턴=홍선근 특파원>워싱턴=홍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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