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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정림사 터(문화유산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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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정림사 터(문화유산을 찾아서)

입력
1996.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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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풍경속엔 백제의 비애가백제 탑의 저녁 노을, 수북정에서 바라보는 봄날 백마강의 아지랑이, 고란사의 은은한 풍경소리, 노을진 부소산에 간간히 흩뿌리는 보슬비, 낙화암에서 애달프게 우는 소쩍새, 백마강에 고요히 잠든 달빛, 구룡평야에 내려 앉은 기러기 떼, 규암나루에 들어오는 돛단배… 옛 시인들이 노래했던 부여땅의 여덟가지 아름다운 풍경들이다.

이 아름다운 정경속에는 어딘지 모르게 비애의 그림자가 짙다. 더욱이 부소산성에 올라 바라보는 백마강의 푸른 물굽이에는 낙화암에서 떨어졌던 백제 여인들의 한이 오늘날까지도 서려 있는 듯하다.

정림사 터 5층석탑에는 백제 사람들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우아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멸망해버린 옛 도읍지의 한복판에서 1,400년을 견뎌온 이 탑은 나당연합군으로 왔던 소정방이 1층 탑신부에 대당평제국비명이란 낙서를 새겨 놓았기 때문에 한때는 소정방이 백제 정벌을 기념해 세웠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1942년 발굴조사 때 이 절터가 백제의 궁성에 있었던 정림사터였음이 밝혀지고 탑 또한 백제인의 솜씨임이 판명되었다. 고려시대 충청도 전라도 일대에 유행했던 백제계 석탑인 무량사 5층탑, 계룡산의 남매탑, 부여 장하리 3층탑, 정읍 은선리 3층탑, 강진 월남사지 3층탑 등이 모두 정림사 탑에 깃든 백제의 아름다움과 정신을 계승한 것이다.

정림사 터에는 5층탑과 함께 세월의 풍파에 시달려 상처투성이가 된 석불좌상이 있다, 팔도 떨어져나가고 눈 코 입이 거의 마멸되어 마치 순교자를 대하는 듯한 거룩한 느낌이 배어나온다. 이 불상은 고려 때 정림사를 중창하면서 새롭게 조성한 것이다. 웅장한 8각 연꽃 좌대에 결가부좌를 하고 손은 비로자나불의 수인인 지권인을 한 모습인데 못생긴 얼굴과 머리에 모자를 쓴 것이 전형적인 고려시대 조각수법이다.

경부고속도로 천안인터체인지로 진입, 23번 국도를 따라 공주로 들어가 다시 40번 국도를 따라 30분쯤 가면 부여에 도달한다.<이형권 역사기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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