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20억 약속 녹음테이프 있다”/“3억중 절반 현금 가방넣어서 전달/이씨 나머지 17억중 13억 받았을 것”/이씨와 100번도 더 만나… 진급청탁때 CDS사업 조건/“노태우 보안사령관때부터 소영씨 알아” 사진도 공개/“서울가려 했으나 심장병 아내 걱정 LA로 돌아갈 것”북경(베이징)에 머물고 있는 무기중개상 권병호씨(54)는 21일 북경한국특파원들과 1시간30분동안 만나 이양호 전 장관, 노소영씨와의 관계 등을 밝혔다.
―이양호 전 장관 관련 메모가 있는가.
『메모한 수첩이 있으나 LA에 있다』
―이 전장관에게 협박을 했다던데.
『협박한 일이 없다. 따진 것뿐이다. 이장관은 문민정부의 장관으로서 부정을 저지른 것 같다. 7억원짜리 빌라를 사고 하는 등의 행동에 감정이 악화한 것뿐이다. 그사람하고 여러차례 아규(논쟁)했다. 「장관을 한 사람이 이렇게 해도 됩니까」라고도 했다』
―노소영씨와는 어떻게 알았나.
『노태우 전 대통령하고 보안사령관 할 때부터 알았다. 소영이가 서울대 공대 섬유공학과 3학년 재학중 언어연수를 하겠다고 LA에 왔는데 우리 집에서 한달 가량 머물렀다. 노 전대통령 가족하고는 식사도 했다』
―13억원을 이양호 전 장관이 대우측으로부터 받았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13억원을 주었는지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상황으로 보아 주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대우중공업 석진철사장이 조선호텔에서 나를 만나 20일 후에 우리 장관이 결재한다고 했다. 돈을 안 받고서야 CDS사업이 어떻게 결재가 낫겠는가』
―이양호 전 장관은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태릉골프장에서 처음 만났다. 골프가 끝난후 서동렬 당시 공군 참모총장과 내 친구 이달화(장군)와 함께였다. 이달화가 며칠후 「이장군(당시 합참본부장)이 사무실에 갈테니 협조해주라」고 했다. 그게 92년 5월쯤이었다. 골프를 한 며칠 후 이(양호) 장군이 사무실로 찾아와 진급할 수 있도록 한번 도와달라고 했다. 당시 나는 CDS사업을 위해 서동렬 총장에게 오산에서 설명회를 가진 일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진급할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 CDS사업을 내가 딸 수 있도록 해달라고 조건을 걸었다. 그랬더니 이장관이 「나는 9월이면 옷을 벗어야 하고 조근해는 더 할 수 있으니 내가 먼저 하는 것이 순리」라는 내용의 메모를 써주었다. 그러면서 「CDS사업은 당신이 할 수 있도록 분명히 해주겠다」는 말도 했다. 그래서 「이 일은 조건부」라고 몇차례 다짐을 받았다』
―이 전장관과는 언제 또 만났는가.
『4∼5일후 우리 사무실로 다시 왔다. 그때 「CDS는 안 그래도 꼭 필요한 장비니까 내가 공군총장만 되면 반드시 구입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원래 이런 사업은 계약서를 쓰고 하는 일이 아니다. 신의 성실과 믿음을 갖고 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장군의 진급건을 소영이를 불러서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노소영씨에게 청탁했나.
『전화연락을 통해 소영이가 한 번 사무실에 왔다. 「내가 이런 부탁을 한번도 한 일이 없는데 가능하면 한 번 도와달라」면서 「내 사업과 연관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소영이가 「무슨 부탁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겨우 이런 부탁이냐」는 말을 했다』
―인사 청탁결과는.
『얼마후 「아주 힘들다」는 연락이 왔다. 「어머니(김옥숙씨)가 조근해 장군이 좋다고 한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소영이 어머니한테 주기 위해 다이아 반지를 준비하게 된 것이다』
―다이아 반지는 어떻게 전달했나.
『소영이를 만나 우리 마누라가 직접 준 것이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몇년이 지나 구속이 되자 소영이가 도로 갖다주었다. 다이아를 돌려주면서 「지금 스의스달러 건도 있고 말이 새면 골치아프니 돌려준다」고 했다』
―이 전장관과는 몇번이나 만났나.
『백 번이 넘을 것이다. 연락은 주로 수석부관인 이성우 중령이 했다』
―대우측으로부터 받은 3억원은 어떻게 전달받았는가.
『90년 3월20일 정호신 당시전무(대우중공업)가 운전사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와서 주었다. 나는 동부 이촌동의 빌라맨션에 살았으며 정전무가 나를 찾아오는 것을 수위도 보았고 우리집사람도 보았고 필리핀 가정부도 보았다』
―3억원중 절반을 어떻게 이 전장관에게 전달했나.
『3월22일 타워호텔에서 만났다. 나는 주로 이장관과 타워호텔의 리이마라는 일식집이 주로 만나는 장소였다. 이장관은 나를 만나 당분간 갖고 있으라고 하면서 전화연락을 할테니 그 때 갖고 나오라고 했다』
―그래서 언제 전달했나.
『4월5일 식목일이었다. 4월2, 3일께 전화가 와서 5일 만나자고 했다. 하오 3시30분 타워호텔로 나오라고 했다. 그래서 차에 싣고 갔다. 식목일이라서 그런지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식목을 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우나를 하고 올테니 골프연습장이 있는 쪽으로 가라고 했다. 그래서 나중에 이장관의 차 트렁크에 돈이 든 가방을 실어 주었다. 현금이었으며 종이테이프에 상업은행이라고 찍힌 1만원권 다발이었다』
―녹음은 왜 했나.
『정전무가 가르쳐 주었다. 이런 일을 할때는 녹음을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래서 이남희 강상만을 시켜 30만원을 주고 소형 녹음기를 구입했고 대우측을 만날때마다 상의 윗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러다보니 20억원 부분이 녹음된 것이다』
―노소영씨는 당신을 한 번 만난 정도라고 했는데.
『그럴 리가 없다. 소영이가 미국에 연수왔을때 내가 관광도 시켜주고 서울에서도 여러차례 부모와 함께 만나 식사도 같이 했다.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우리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도 있다(권씨는 사진을 보여달라는 주문에 마지 못해 응하는 듯 사진을 꺼내 보여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북경에 며칠 더 머물겠다. 서울로 가려 했으나 내가 구속되는 장면을 심장이 나쁜 와이프가 보면 심장마비에 걸릴 것이다. 지방에도 들렀다가 LA로 돌아가겠다』<북경=송대수 특파원>북경=송대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