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배에게 매를 맞아 숨진 동료의 죽음을 실족사했다고 집단 거짓말을 했다는 12명 중·고생들의 「비겁한 행위」를 전해듣는 우리는 할말을 잊게 된다. 친구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의리도, 불의에 대한 울분도 누구에게서나 찾아 볼 수 없었던 것은 충격이다. 이기가 극대화한 우리사회의 투영을 보는 것 같다.동료의 죽음을 은폐한 12명의 청소년들은 모험심과 호기심이 한창 발동할 나이인 15∼16세의 중3 또는 고1년생들이다.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그 나이 또래면 진실과 거짓을 능히 분간할 만 하다. 정의와 불의가 무엇인가도 알만한 때다. 부당한 일을 보면 의협심이 용솟음칠만도 한 나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불량배의 보복위협이 두려워 매맞고 숨진 친구를 미끄럼틀에서 실족해 죽었다고 경찰에 거짓 신고했다. 경찰의 현장 검증때는 실족사장면을 허위로 재연했다고 한다.
정의감도, 용기도, 의협심도 찾아볼 수 없는 이 딱한 청소년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폭력에 대한 무력감에 찌들어 작은 협박에도 쉽게 굴복하고, 자신에게 피해가 올 것만 두려워 악이나 불의를 보고서도 나서기는커녕 오히려 외면해 버리는 무기력한 청소년들. 약삭빠른 어른들 못지않게 순수성을 상실한 이 어처구니 없는 청소년들은 누구의 탓 때문인가.
그리고 그게 어디 비단 이 12명의 중·고교생들에게 국한되는 얘기이고 내 자녀는 그렇지 않다고 누가 감히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잘못된 청소년 문제의 인과를 따지다 보면 항상 결론은 학교 교육과 가정 교육의 책임에 귀착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눈앞의 부당한 일을 보고도 나서기 보다는 자기만 다치지 않으면 된다는 식의 비굴한 행위가 상식처럼 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퐁조 또한 그 책임에서 예외일 수가 없다.
학교든 가정이든 정의감에 불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용기있는 시민과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할 줄 아는 의인을 기르는 교육에 인색하기 짝이 없다. 반대로 그런일을 하다가 희생되면 나만 손해라는 극히 이기적인 교육에만 너도나도 열중하다 보니 나라와 사회와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해 나를 희생할 줄 아는 용기있는 사람과 의인이 점차 사라져가는 삭막한 사회가 돼버리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 사회의 미래가 보다 밝아지고 그래서 살만한 사회가 되자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어려운 이웃을 도와줄 줄 알고, 불의를 보면 맞설줄도 아는 용기와 의협심을 길러주는 교육을 학교와 가정이 해야 한다. 그게 공부를 잘하는 것 이상으로 값진 일이라는 것을 청소년들이 알게 해야 한다. 비겁한 청소년들의 얘기에서 어른들은 그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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