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로가 공자에게 『위나라의 임금이 선생님을 모셔다가 정사를 하려 한다니 선생님께서는 무슨 일부터 하시겠습니까』하고 묻자 공자는 『반드시 먼저 이름을 바로잡을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이것이 정명론이다. 정명은 명분을 바로 세운다는 뜻으로도 풀이되지만, 요컨대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듯이 모든 것은 그 이름에 값해야 하고 모든 이름은 그 값어치대로 불려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공자는 이름이 정확하지 않으면 말이 순리있게 통하지 못하고 말이 순리롭지 못하면 아무 일도 성사시킬 수 없다고 덧붙여 설명했다.지금 우리 정치에서도 맨 먼저 해야 할 일의 하나가 정명이다.
우리는 현정권을 문민정부라고 통칭하고 있다. 그리고 전두환·노태우 정권을 5·6공으로 일괄해 부른다.
우리나라의 공화국 호칭은 프랑스의 분류법을 본뜬 것이다. 프랑스혁명후 1차헌법이 제정되면서 제1공화국이 시작된 이래 두차례의 제정과 2차대전 때의 비시정권으로 공화정이 중단되곤 하다가 이른바 드골헌법으로 제5공화정이 성립되어 오늘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래 대통령제에 이어 4·19이후의 내각책임제, 5·16군사쿠데타에 의한 대통령제 복귀, 유신헌법, 신군부집권 후의 대통령 간선제, 그러고는 6·29선언 후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된 개헌으로 제6공화국이 출범했다.
프랑스의 산법은 제5공화정을 제외하고는 공화정이 끊겼다가 재생된 차례를 헤아리고 있으나 우리는 헌법개정으로 권력의 구조나 구성방식이 변할 때마다 새로운 공화국으로 불러온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수립후 한번도 공화헌정 자체가 단절된 일이 없다.
이래서 우리는 지금 제6공화국에 와 있다.
그런데 요즘 6공이라면 으레 노태우정권을 지칭하고 현정권은 6공이 아닌 것같은 관용법이 통용되고 있다. 5·6공이라 묶어서 말할 때 특히 그런 인상이 짙다. 심지어는 「5·6공 청산」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래서 현정권은 6공과는 상관없는 문민정부라는 것을 부각시키려고 한다.
문민정부는 현정권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다. 현정권이 자꾸만 문민정부를 내세우는 것은 3공 이후를 군사정권으로 규정하고 이와 차별화하자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문민정부는 군사정부에 대칭되는 개념인 것이지 한 정권의 이름일 수는 없다. 현정권만 문민정부인 것이 아니라 1공도 2공도 문민정부였다. 앞으로 다시 군사정권이 들어서지 않는한 문민정부는 정권이 아무리 바뀌어도 계속될 것이다. 문민정부가 현정권만의 전매특허일 수 없고 현 정권만의 관사이거나 고유명사일 수도 없다. 오랜 군사정권 뒤의 전환기의 용어일 수 있고 역사를 단락지을 때의 한 단계의 이름일 수는 있어도 집권후 4년이 가깝도록 한 정권의 상용 명칭인 것은 우습다.
정부로서는 정권의 미화를 위한 도료로 문민정부를 언제까지나 자칭하고 싶겠지만 국민으로서는 이에 현혹되고 있을 일이 아니다. 문민정부라고 하여 모든 것이 다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고 그 속에 만병통치의 묘약이 들어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 말을 무슨 지도이념이기나 한 것처럼 높이 치켜들어 자기 호도용으로나 자기 도취용으로 남용하기 쉽다.
따라서 문민정부는 이제 6공의 「김영삼정권」(또는 정부)이 될때가 되었고 요즘 흔히 말하는 5·6공은 「전·노정권」(또는 정부)이라야 옳을 것이다.
김영삼정부는 엄연히 6공의 연속이다. 문민의 그늘에 숨어 6공을 외면할 일이 아니다. 6공이 정치적으로는 불명예스럽기만 하지도 않다. 정권의 정통성 시비는 6공 탄생때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는 것을 부인 못한다. 오늘의 민주화 작업은 6·29선언 이후 6공과 함께 시작된 것이지 김영삼정부로부터 출발된 것은 아니다. 현 정부가 문민이란 이름으로 민주화의 영예를 독점할 권리는 없다. 헌정체제가 조금도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김영삼정부는 6공과 단절되지 못한다.
정명없이 정사는 없다. 이름이 잘못 불려지면 역사의 자리매김에 혼선이 생긴다. 이름을 바로 부르는 것은 정치가 맨먼저 해야 할 일일뿐 아니라 역사가 맨먼저 해야 할 일이다.<본사 논설고문>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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