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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과 물길(천자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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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과 물길(천자춘추)

입력
1996.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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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를 이용해 고향을 찾는 충청도나 전라도 분들이라면 39번 국도를 알고 있을 것이다. 의정부에서 고양 부천 안산 수원을 거쳐 평택과 아산만 방조제를 지나 아산과 유구, 그리고 칠갑산을 넘어서면 부여로 이르는 29번 국도와 만나는 신내지점까지가 39번 국도이다. 우리동네 앞을 지나는 이 도로로는 매년 명절 때마다 정체된 차들의 행렬이 꼬리를 문다. 귀향이나 귀경길에 오른 사람들이 이 특별하달 것도 없는 도로를 기억해야하는 이유는 바로 그 끊임없는 정체이다.정체의 원인 가운데 하나는 대다수 차량들이 들를 필요가 없는 각 소재지 상업과 주거지역을 통과해야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생겨난 게 외곽도로다. 그러나 길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 이익이 발생한다는 점을 사람들은 놓치지 않는다. 새로 난 도로변의 절대농지가 준농림지역으로 바뀌더니 어느새 음식점들과 러브호텔들, 용도를 알 수 없는 조립식건물들이 들어선다. 한적한 시골의 도로변에서 그런 건물들과 마주하게 되면 이익이 발생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파고들어가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 속성을 본다. 그 속성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만큼이나 훤칠하게 뚫린 길이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효율성이나 편리성을 내세워 하천을 정비하고 제방둑을 쌓거나 길을 내는 일이 궁극적으로 인간들을 위하는 길인지도 의문스럽다. 도심을 지나는 하천은 먹이사슬에서 분해자의 역할을 잃어버린지 오래다. 또한 하천둑은 작은 홍수에는 효과적이지만 올여름 강원도 철원지방의 홍수처럼 둑의 범람이나 유실로 생존의 근거를 뿌리째 드러내는 재난을 야기시키기도 한다. 도로확충이나 치수사업으로 인간은 상당부분 자연을 통제하는 듯도 싶지만 길도, 물길도 정작 인간에게서 멀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지난 추석명절 때 정체가 특히 더 심했던 곳은 외곽도로와 구도로가 만나는 지점이었다. 차량의 증가나 짧은 기간 동안 벌어지는 민족 대이동, 운전자들의 교통법규준수를 탓할 일만은 아니다. 길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뚫는 게 아니라 물길처럼 흐르는 것이어야 한다는 해묵은 사고가 오히려 새롭게 다가드는 것은 왜일까.<박경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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