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투쟁 더욱 불붙을듯/희생양 이미지 가미 강력 야 지도자 부상/「해결사」 실각따라 체첸사태 미궁속으로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알렉산데르 레베드를 국가안보위원회 서기직에서 전격 해임한 것은 45년전 한국전 당시 해리 트루만 미 대통령이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를 미 극동군사령관직에서 끌어내린 것을 연상시킨다. 45년전 「대통령」의 「원수」해임은 갈등의 끝이었다. 그러나 이번 「대통령」의 「장군」해임은 갈등의 시작이다.
레베드의 실각은 아나톨리 쿨리코프 내무장관이 군개편과정에서 나타난 레베드측의 독단적인 움직임을 쿠데타 음모설로 몰고 간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지만 근본적으로는 레베드가 크렘린의 마키아벨리식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측면이 강하다.
또 옐친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기득권 세력에 대한 신진세력의 「체제안에서의」공세가 실패로 돌아갔음을 의미한다.
크렘린의 권력투쟁은 지난달 5일 옐친 대통령의 심장수술 발언을 계기로 권력공백현상이 나타나면서 본격화했다.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총리와 아나톨리 추바이스 크렘린 행정실장, 레베드 국가안보위서기를 핵으로 형성된 집권층의 3대 세력은 공공연하게 「포스트 옐친」을 겨냥, 권력암투를 벌여왔다. 이같은 양상이 레베드의 해임으로 극적 전환기를 맞게된 것이다.
「야인」 레베드가 대옐친· 대정부투쟁에 나설 것을 선언한 만큼 러시아의 권력투쟁은 크렘린의 「이너서클(핵심층)」의 영역을 넘어서 본격화할 전망이다.
레베드가 막강한 권한을 지닌 국가안보위 서기직에서 해임됐다고 해서 그의 정치생명이 끝난 것은 결코 아니다. 체첸사태의 해결사로 부상한 그의 인기는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정치인들 가운데 1위를 차지했고 평화구축 노력은 무려 60%의 지지를 얻고 있다.
여기에다 부패한 기존 정치세력으로 부터 축출된 희생양의 이미지까지 가미되었기 때문에 그는 강력한 「야당지도자」로 거듭 태어난 셈이다. 때문에 러시아 민주선택당 등 크렘린을 포위하고 있는 군소 야당들이 그를 중심으로 또다시 집결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전망과 관련해서는 강직하고 끈질긴 그의 성격도 고려해야할 요소다. 그가 아내인 인나를 4년간의 구애끝에 결혼에 골인한 일화는 유명하다. 또한 그의 대중조직도 예전과는 다르다. 그는 8월30일 체첸평화안 조인을 계기로 국내외에 영향력을 확대해왔으며 지지세력인 「러시아 공동체 의회」와 군출신들의 「명예와 조국」을 「진리와 질서를 위해」라는 새 정치조직으로 확대개편하는 등 대중적 기반을 강화해왔다.
레베드의 해임은 체첸 사태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쿨리코프 장관을 중심으로 하는 대체첸 강경파인 이른바 「전쟁당」이 레베드의 실각을 자신들의 승리로 받아들일 경우 체첸사태는 더욱 혼미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레베드의 협상 파트너 아슬란 마스하도프 체첸군 사령관은 레베드 실각직후 『체첸은 러시아의 대공세를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까스로 찾아낸 체첸분쟁의 정치적 해결책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모스크바=이진희 특파원>모스크바=이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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