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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소설,시간성­「취우」와 「대동강」(신문학사 탐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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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소설,시간성­「취우」와 「대동강」(신문학사 탐구:21)

입력
1996.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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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 이야기로 리얼리즘 “채색”/남의 염상섭은 「취우」서 비극을 객관화 시간을 주인공 삼아 「적치 3개월」을 “방관”/북의 한설야도 「대동강」서 북 시각으로 유엔군 치하 3개월의 시간성을 그려/시적현실선 유치환의 「죄욕」처럼 죄의식에객:6·25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민족통일이 아직도 커다란 과제로 우리 앞에 걸려 있는 만큼 이 물음은 미래적인 과제이겠지만, 그 동안 다음 두 가지 시각에서 접근해 오지 않았나 여겨집니다. 세계사적 시각과 민족사적 시각. 한국전쟁이라 부를 경우가 전자라면 6·25(사변)라 부르는 경우가 후자 아닙니까.

주:1950년 6월25일부터 1953년 7월27일까지에 걸쳐, 적 인명피해 180만, UN군측 인명피해 33만, 전비 150억달러로 말하는 것도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이지요. 갈데없는 냉전체제의 산물. 제3차 세계대전이라는 표현도 있었던 것이니까. 미소 양측의 세계제패 전략과 이데올로기 대립의 구조 속에서 파악될 성질의 것이겠지요. 미소 양국의 극비문서가 완전히 공개되는 시기가 오면 이 방면 연구에 큰 진전이 있을 것입니다.

객:B.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1981)은 어떻습니까. 그 저서는 한국전쟁의 기원을 일차적으로는 해방에서 1950년 사이의 사건들 속에서 탐색하기, 이차적으로는 해방 후의 한국정치의 특징을 부여케 한 일제강점기의 원인들 속에서 탐색하기로 요약되지 않을까요. 냉전구도에다 일제강점기의 구도까지 포함한 탐구인 셈.

주:1945년부터 1950년까지의 시기는 혁명이라는 특징을 갖는 하나의 역사적 단위로 보기 때문에 한국전쟁이란 단지 그것의 물리적 표현일 뿐이라는 것. 그 증거로 커밍스씨는 그 기간에 벌어진 공개적 싸움에서 수만명 이상이 죽었음을 들었지요. 좌우익의 투쟁양상은 성격상 내란이나 혁명이었고, 그것은 해방 직후부터 시작되었으며, 6·25라는 재래전의 개시는 단지 다른 방법에 의한 싸움이었다는 것. 학자답게 그는 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매우 광범한 자료를 동원했더군요.

객:민족사의 시각에 서면 「한국전쟁은 간 곳없고, 대신 6·25사변」으로 표상되겠는데, 이에 제일 본질적으로 그리고 철저하게 대응되는 것이 문학적 영역(표현)이 아닐까.

주:만일 「문학적」이라는 한정사를 좀더 유연성 있게 사용한다면 6·25에 대한 본질적 규정(표현)은 오직 이 영역에서 가능해질 것입니다. 그것은 깊은 죄의식으로 집약되는 것. 가해자든 피해자든 어리석기는 마찬가지라는 어떤 심정적인 느낌이라고나 할까. 예언자적 목소리로 울려 퍼지게끔 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객:「이는 끝내 제도못할 백성의 근본이러뇨./이 날 이 불의의 저지른 슬픈 치욕을/여기에 기틀 삼는 자 또한 있거들랑/하늘이여 마땅히 삼천만을 들어 벽력할지니/아아 겨레된 벌로 묻힌/내 손바닥의 이 죄욕을 두고두고 앓으리라」(유치환, 「죄욕」 중의 일절)

주:적절한 인용입니다. 백범 피살(1949·6·29)의 비보에 접한 시인의 이 심정이 문학적 울림의 한 가지 사례가 아닐까. 6·25도 그러한 울림의 연장선상에서 표현되는 것. 「죽은 자도 산 자도 다 함께/안주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조지훈, 「다부원에서」)는 울림,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미움으로 맺혔건만/이제는 오히려 너희의/풀지 못한 원한이/나의 소망속에 깃들여 있도다」(구상, 「국군묘지」)라는 울림 속에 6·25가 있다는 것. 이를 일러 시적 현실이라 부를 것입니다.

주:6·25가 초래한 것은, 문학적 측면에서 보자면 (1) 민족어의 재편성 (2)반전사상(휴머니즘) (3)죄의식 등으로 요약될 수 없을까. 피난민, 군대, 도시 인구이동 등으로 말미암아 민족어가 그만큼 풍요로워졌다 함은 문학적 자산이 아닐 수 없지요. 어떤 전쟁문학도 전쟁하지 말자는 사상의 표현이기에, 휴머니즘의 꽃핌으로 볼 수 있지요. 그 위에 동족상잔이 아니었던가. 「제도 못할 백성」으로서의 죄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수밖에.

객:산문적 현실은 과연 어떠한가. 이 점이 제일 궁금한데 어떻습니까? 산문적 현실이란 역사적 현실 그것도 아니지만, 시적 현실과도 다른 범주 아닙니까. 요컨대 사람이 살아간 이야기일 테니까.

주:사람이 살아간 이야기라 할 때 주목해야 할 점은 어떤 경우에도 사람은 살아간다는 점. 어떤 경우에도 사람이 살아간다 함은 가장 적절히 살아감이 아닐 수 없다는 것.

객:그런 전제 위에 성립되는 것이 소설 아닙니까. 남북한을 통틀어, 6·25를 다룬 대표적인 소설을 들라면 어떤 것이겠습니까. 질문이 조금 조급하달까 흥미거리처럼 들리기 쉽지만, 사실 문학사의 자리에서는 이처럼 궁금한 것도 없지 않습니까.

주:문학사에 관심을 둔 사람이라면 이런 궁금증에서 자유롭기 어렵지요. 지적 흥미 이상의 것이니까. 저도 여러번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번번이 망설였지요. 상황적 이유도 있었고 6·25가 아직 가까이 있었고, 장차 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고 또한 공부가 모자라기도 했고….

객:선생의 처지로 보아 지금쯤은 어느 정도 겨냥해 볼 수도 있을 법한데….

주:남쪽에서의 대표적인 6·25소설의 하나로 염상섭의 「취우」(「조선일보」, 1952·7·18∼1953·2·20)를 들 수 없을까.

객:「취우」란 제목은 글자 그대로 하면 소낙비 아닙니까. 「창조」파의 김동인과 맞선 「폐허」파의 두목, 근대소설의 주춧돌격인 「표본실의 청개구리」(1921)에서 출발, 「만세전」(1924), 「삼대」(1931) 등의 걸작을 쓴 횡보 염상섭의 안목에서 보면 6·25란 한갓 지나가는 소낙비에 불과하다? 몇 대목만 들어 볼까요.

(A) 「로우터리 한가운데와 가상자리에 서고 앉은 한 적병들의 주위에는 젊은애들이 옹위하고 서서 무엇인가 지절대는 소리를 듣고 있다. 약장수나 손금보는 점쟁이를 둘러싸고 구경하는 듯한 유장한 풍경이다.」

(B) 「그야 그렇지마는 깃대를 여나문개 만들어 두고 이놈이 들어오면 이 깃대를 들고 저놈이 들어오면 저 깃대를 들고 나가는 중국사람의 신세가 되어가니, 기가 막히지 않아요?」

서울에 입성한 인민군을 서울 시민들이 구경하는 장면이 (A)이고, (B)는 말할 것도 없이 주인공의 하나가 푸념하는 대목. 냉소적이자 방관자적 태도로 일관되어 있지 않습니까.

주:27세의 무역회사 과장 신영식과 여비서 강순제를 주인공으로 하여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실상 이런 인물들은 중요하지 않지요. 6·25로 말미암은 인물들의 운명을 다룬 경우라면, 많은 군소작가들처럼 염상섭도 「엄청난 비극」으로 6·25를 다루어야 했을 터. 인물의 운명을 바꾸어 놓게 될만큼 6·25란 엄청난 사건이니까.

객:그렇다면 「취우」의 주인공이랄까 중심과제는 따로 있다?

주:시간이 주인공이자 중심과제였지요. 6·25란 다시 무엇인가. 수도 서울이 인민군에 의해 점령된 것은 6월28일에서 9월28일까지 꼭 3개월. 흔히 적치 3개월이라 부르기로 요약되는 것. 만일 이 3개월(시간)이 주역이라면, 그 속에 살아간 인물들이란 한갓 방관자 이상일 수 있을까. 쌀가게도 열어야 하고 전차도 다녀야 하며, 여인들은 물방울 무늬의 원피스를 입고 나들이도 할 수 밖에.

객:선생은 지금 헤겔, 루카치적인 의미의 소설(Roman, 장편)의 본질론을 펼치고 있군요. 삶의 본질은 탐구되지 않으면 안 되지만 동시에 본질은 찾을 수 없는 것, 이것을 소재로 한 소설 장르에서만 시간은 형식과 함께 주어진다는 명제. 요컨대 소설이란 서사시의 적자이긴 하나, 이 시간의 도입으로 말미암아 서사시와 결정적으로 구분된다는 것.

주:…

객:그렇다면 북쪽의 경우는 어떠할까요.

주:한설야의 「대동강」(1955)을 들 수 없을까.

객:UN군의 평양탈환(10·19)에서 철수(12·4)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이 거의 3개월 아닙니까. UN군 치하의 평양시민들은 어떠했을까. 선생의 논법으로 보면 한갓 소나기였을 텐데…

주:카프의 맹장이었고, 북조선 문예총의 책임자인 대가급 작가 한설야이고 보면 UN군 점령하의 수도 평양의 삶을 어떻게 그렸을까. 물론 「황혼」(1936)의 작가답게 한설야는 인쇄공인 18세의 소녀 점순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젊은 세대들이 평양탈환에 어떻게 투쟁하여 승리를 이끌어 내었는가를 다루고 있지요. 한 대목만 볼까요.

(A) 「놈들(UN군)이 갓들어온 얼마동안은 전등도 라디오도 감감했는데 발전기를 실은 군함이 오느니 자동차가 오느니 하고 벅자 고아대더니 이럭저럭 전기를 보내게 되었으나 점순에게는 그 놈들의 불빛이 악마의 눈알처럼 도리어 몸서리가 쳤다.」

(B) 「놈들은 군대 물건이고 탈취한 물건을 팔아 넘길 때마다 으레 군대 담배를 끼어 팔았다. …언제나 물건의 매매가 끝난 다음에는 어김없이 엠피놈이 쫓아와서 물건 판 사람을 수사하고 미군 금제품을 가지고 있다고 으렁대며 모두 빼앗아 갔다.」

객:부정적으로만 그렸군요.

주:평양 수복 후, 피난파와 잔류파의 갈등도 나타나 있지요. 흡사 우리측의 도강파와 비도강파의 갈등 모양…

객:잔류파, 피난파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궁금한데요.

주:피난파는 당의 명령에 따른 것이니까 문제삼지 말라는 것으로 처리하더군요.

객:「대동강」이 젊은 세대의 평양방어전이었고 그들의 투쟁정신을 그린 것이겠지만, 그런 것은 다만 체제상의 차이겠고 선생의 시선에서 보면 「대동강」의 주역은 덕준이나 점순이 아니라 「취우」모양 「시간성」이겠지요.

주:제 시선이기에 앞서 소설이라는 장르가 갖는 고유성에서 말미암는 것이 아닐까.

객:문학밖에 도무지 아는 것이 없는 선생인지라 지금 「염상섭이나 한설야가 우리의 발자크다」라고 말하고 싶겠군요. 리얼리즘의 승리(엥겔스)말입니다. 이들 소설이 어쩌면 당대 어떤 역사학자나 경제학자의 저술보다 진실에 가까울지 모른다라고.<김윤식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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