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듣는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배 떨어진 현상과 까마귀가 날아간 현상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전혀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가」라는 현상이 일어난 뒤 「나」라는 현상이 관찰되면 「나」는 「가」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연의 일치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즉시 결론을 내리지 않고 같은 일이 여러번 반복되기를 기다리든가 실험을 통해 검증하는 과학적 태도를 취한다.어떤 음식이나 약을 먹었더니 병이 나았다는 주장은 원인과 결과의 연관성을 상정하고 하는 말이다.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굳이 그런 주장을 하지 않을 것이다. 4,000여년전 제작된 이집트의 파피루스에는 악어의 똥, 당나귀의 발굽, 도마뱀의 피 등이 여러가지 질병치료에 좋다고 기록돼 있다(물론 지금은 쓰이지 않는 치료법이다). 20세기 미국의 신문에는 지금은 자취를 감춘 온갖 특효약 광고가 범람했다.
○검증 안된 특효약 범람
21세기를 앞둔 요즘의 우리나라 신문·잡지도 크게 다를 바 없어 각종 특효약이 범람하고 있다. 정력에 좋다는 말만 있으면 까마귀가 멸종되고 굼벵이가 비싼 값에 거래된다. 모두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치료법이다.
그러면 어떤 두가지 현상간에 인과관계 유무를 어떻게 결정하느냐가 우리의 관심사가 돼야 할 것 같다. 병이 나은 것이 과연 음식이나 약을 먹었기 때문인지, 다른 약이나 음식을 써도 비슷한 효과가 나타나는지(위약효과), 같은 병을 앓는 모든 사람에게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 등이 궁금해 진다. 만일 우연의 일치라면 같은 병을 앓을 때 그 약을 굳이 쓸 필요가 있을까. 더구나 대개의 약에는 기대하는 치료효과 외에 각종 부작용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확실한 증거없이 사용하는 게 현명한지 생각해 볼 일이다.<
○약에 「밑져야 본전」 없어
「밑져야 본전」은 없다. 시간을 낭비해 기회를 놓치고 병이 악화할 수도 있으며 경제적 비용도 들 것이기 때문이다. 건강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좋지만 이를 위한 우리의 행동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여러 사람에 의해 과학적으로 분석되고 우연의 일치가 아닌 확실한 인과관계가 증명된 진료만을 요구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있다. 인과관계의 판단은 선입관이나 바람 등에서 벗어나 검증된 근거에 의존해 내리는 것이므로 잘 훈련된 전문가에 의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과학적으로 증명된」이란 말이 너무 흔하게 남용되는 것도 공해의 하나로 볼 수 있다.<홍창기 울산대 의대학장 객원편집위원>홍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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