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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주자」들에게/최상룡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화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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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주자」들에게/최상룡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화요세평)

입력
1996.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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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대권이란 말은 시민혁명 이전 영국왕이나 일본의 메이지(명치)국왕의 권능을 표현하는데 쓰였다. 따라서 애당초 민주적 언어가 아니었던 대권을 모든 매체가 마구잡이로 남용하고 있는 모습은 보기에도 좋지 않다. 차라리 대통령선거에 뛰려고 하는 사람이란 의미로 대선주자란 말을 쓰면 어떨까.지금 우리 사회에는 체제의 변혁을 바라는 사람은 거의 없으나 체제의 건강을 걱정하는 사람은 너무 많으며 국민 모두가 우리 체제에 대한 권위있는 종합진단과 처방을 절실히 요망하고 있다. 북한, 경제, 안전, 환경, 교육, 문화등 어느 하나도 무겁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제가 담당부서의 실무자에게만 맡겨서는 해결하기 힘든 큰 정치문제들이다. 대선주자들은 서로 눈치보며 저마다 후보가 되기위해 작전을 꾸미고 있는 것 같으나 유권자들은 관심만 지대하고 화제만 무성할 뿐 아직도 뚜렷한 판단기준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역주의 벗어야

98년 대통령이 될 사람은 지금 대한민국이 당면한 정책과제에 대해서 자기의 소신을 담은 소책자 한권쯤 내놓아야하고 언제라도 TV토론에 응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책자에 담긴 소신은 선전용 미사여구나 교과서적인 대답이 되어서는 안되고 지금까지 자신의 식견과 경륜에서 신뢰를 얻을만한 것이어야하며 각 분야 참모들의 의견을 짜깁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역사의식과 판단력과 실현가능성을 담은 호소력있는 내용이라야 한다. 대선주자들은 몇마디의 상징적인 키워드로 이름 알리기에만 연연하지 말고 유권자들이 식별할 수 있는 정책대안들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서 유권자가 상대적 우위에 있는 사람을 고를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복수의 대선주자들 사이에서 상대적 우위가 보이지 않아 선택이 어려워지면 지연 혈연 학연 등 우리 사회의 고질적 요인에 의해 진부한 선거전을 치르게 될 것이 뻔하다. 이 기회에 또 한가지 덧붙일 것은 TK유권자의 사려와 역사의식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란 점이다. 그동안 TK지역 사람들은 30여년의 한국현대사에서 권위주의적 산업화의 성공사례를 만드는데 큰 공헌을 했다.

TK정서는 그 응집력때문에 편협한 지역감정으로 퇴보할 수도 있고 나라의 중심을 바로잡는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다음 대선에서 TK유권자가 나라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은 지역주의를 뛰어넘어 가장 탁월한 사람을 고르는 대범함 을 보이는 것이다. 민주화에 기여하고 젊은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 정보화·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사람, 그리고 품격과 도덕성이 높은 사람 정도는 이 나라 대통령의 기본조건일뿐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당면한 엄청난 정책과제들에 대해 분명한 메시지가 담긴 소신과 신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문제는 우리 정치의 최대의 도전이다. 전의와 적의를 숨긴 상대와 평화 협상하는 것은 무용한 일이며 더욱이 일방적인 양보는 있을 수 없다. 설령 북한지도부의 이익과 북한체제의 유지에 도움이 되는 당근을 주면 대화는 시작할지 모르나 그것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도움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 적어도 북한문제에 관한한 일희일비하는 경솔함을 보여서는 안된다. 북한문제는 단순히 남북한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내정·외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환상이나 격분의 감정으로 처리할 것이 아니라 냉혹한 이성으로 최악을 피해나가는 예지가 필요하다. 국민통합과 한미 군사협조가 그 어느때보다 절실하다.

우리 경제는 앞으로 의외의 변수가 없는 한 2·3년 계속해서 큰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다. 숨겨진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나 현상에서 바랄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이제 21세기를 향한 경제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정책소신 밝힐때

안전문제는 우리 사회의 대외신용의 바로미터이다. 각종 안전시스템의 유지, 개선을 위해서는 막대한 예산과 함께 설계, 시공, 감리의 전과정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환경문제는 다행히 정부, 민간분야에서 다같이 그 심각성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 같아 다행스러우나 환경개선 또한 안전문제와 마찬가지로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며 시민운동수준에서도 지속적인 관심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전세계가 인정하는 우리의 교육열도 이제 미래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향으로 제도화해나가야 한다.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결국 우리 삶의 문화적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이들 모든 문제가 일과성이 아니라 구조적 성격을 띠기 때문에 그 해결도 단편적인 대증요법이어서는 안되고 체계적인 중·장기 처방이어야 한다.

대선주자들은 우리 국민이 당면하고 있는 이들 엄청난 문제들에 대한 자기 나름의 소신을 원론적 수준이 아니라 신선하고 믿음직한 각론으로 제기해주기 바란다. 지금은 「대권운동」할 때가 아니라 대선에 앞서 지도자로서 자기의 정체성을 국민 앞에 밝힐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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