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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러 동포시인 리진씨 국내서 첫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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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러 동포시인 리진씨 국내서 첫 시집

입력
1996.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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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구마다 배어 있는 ‘나라없는 45년’러시아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동포시인 리진씨(본명 이경진·66)가 고국에서 시집을 냈다. 자신의 두 번째 시집이며 한국에서 처음 낸 「리진서정시집」(생각의 바다간)은 보통 시집 네 권 정도 분량이다. 함경북도 함흥에서 출생, 김일성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다 6·25전쟁에 참전했고 전쟁 중 모스크바로 유학, 망명한 그가 북에도 남에도, 옛 소련에도 의지하지 않고 보낸 45년 무국적 세월이 270편의 서정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강으로는/실오릿길로도 나선다//아득한 별을 벤 꿈이/온 숲을 그러안고/밤길을 간다/그 무섭던 주먹도/잊었다/뭇 입도 이미/두렵지 않다/갈대같이 가냘파도/이내같이 아련해도/땅을 디디고 가며/사시나무 그늘의 앵초의 꽃잎에서/연방울을/털어주기도/잊지 않는다//강으로는/실오릿길로도/나선다」(「강으로는」 전문·1966.5)

그의 시는 우리글로 쓰여진 시로는 보기 드문 곳에 자리하고 있다. 전쟁으로 두동강이 나 제 각각 발전한 남북의 시문학과 동떨어져 있고 이국 땅에서 새로운 문화를 이루어온 중국의 조선족 등 동포문학권의 시와도 다르다.

『저의 시는 크게 고국에 대한 향수를 담은 시와 북한을 비판하는 정치성 강한 시의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향수나 옛 소련의 풍정을 그린 서정시도 배경에는 정치적인 비판과 울분의 목소리를 가라앉혀 두고 있습니다』

옛 소련의 흐루시초프 공산당서기장 실각 직후인 65년에 쓰여진 「강이 풀린다」를 보면 표면적으로 볼가강의 빙설이 봄이 와 풀어지는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당시 경색된 공산정국을 비판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시마다 품고 있는 정치적 비판 때문에 써놓고 발표하지 못한 시가 대부분이었다.

그의 시에서 또 하나 눈여겨 볼 대목은 순수한 우리말을 살려 쓰려는 노력이 돋보인다는 점이다. 「해돌이」(나이 연륜), 「너덜」(잔 돌이 깔려 있는 산비탈) 등 우리말이 살아 있고 세심한 정경을 통해 정치적이건, 서정적이건 시의 주제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수법이 능란하다.

『남한에 알만한 사람이 전혀 없지만 월남한 고향 출신 인사들을 더러 만났다』는 그는 한민족문학인대회에 참가하는 등 한국에서 열흘 정도 머무르다 12일 출국했다. 알마아타에서 발행되는 한글신문 「레닌기치」(현 고려일보)에 57년 시를 발표하기 시작한 그는 87년에는 첫 시집 「해돌이」를 한글판으로 출간했다.

92년에는 한국문인협회가 제정한 제3회 해외한국문학상을 수상했다. 현 거주지는 113639 BALAKLAVSKY PROSPECT, 3―318, RUSSIA, MOSCOW.<김범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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