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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선택」/여성해방운동과 남성소설가(소설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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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선택」/여성해방운동과 남성소설가(소설평)

입력
1996.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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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이 「세계의 문학」 가을호에 그 첫회분을 발표한 장편소설 「선택」은 조선조의 어느 양반 가문에서 이른바 유교식 현모양처의 모범생으로 살다 간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긍정적으로 부각시키면서 오늘의 여성해방운동을 비판하고 있는 소설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쓰면서 오늘의 여성해방운동에 대한 자신의 거부감이 얼마나 강렬한 가를 조금도 숨기지 않고 있다.이문열이 이처럼 적극적인 태도로 오늘의 여성해방운동에 맞서서 공격의 깃발을 치켜 든 것을 보았을 때 나의 머리 속에 맨 먼저 떠오른 것은, 일년 전 여성해방운동을 비판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어느 소설가의 저서를 평하는 글 속에 나 자신이 적어 놓았던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기득권을 가진 자가 「무조건적 사랑」이니 「무조건적 친애」니 하는 따위의 고상한 말들을 앞세우면서, 그리고 논리를 따지는 태도에 수반되는 「불모화」의 위험성을 과장하여 강조하면서 기득권 없는 자의 항변을 억누르는 것 만큼 아름답지 못한 풍경은 세상에 드문 것이다』

위의 구절에서 「고상한 말」의 예로 제시되었던 것과 위험성이 과장된 예로 제시되었던 것을 각각 다른 말로 바꾸기만 하면, 그것은 이문열의 「선택」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다(참고로 덧붙이자면, 이런 지적은 9월26일자 「한국일보」에 실린 김광일의 글에 대해서도 역시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다. 그 글은 정신의학이라는 것이 참다운 인간해방의 과제에 대한 전적인 무지와 결합될 경우 사람들에게 얼마나 바람직하지 못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충격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남성이, 그 중에서도 특히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오늘의 여성해방운동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하고자 할 경우에는 「유교적 가부장제가 절대적인 힘으로 세상을 지배했던 기나긴 세월 동안 그 가부장제 때문에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부당한 고통은 얼마만한 것이고 남성들이 누린 부당한 혜택은 또 얼마만한 것인가」를 깊은 고뇌와 부끄러움 속에서 성찰해 보는 단계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나는 이러한 생각이 조금도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남성작가라면 누구나 머리를 끄덕일, 상식수준의 생각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내가 지난해에 비판했던 어느 소설가의 저서를 보면, 그리고 이번에 발표된 이문열의 「선택」을 보면 이 나라 문학계의 현실은 전혀 그게 아닌 모양이다. 도대체 우리는 지금 몇 세기에 살고 있는 것인가?<이동하 문학평론가·서울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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