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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을 보는 지혜(사설)

입력
1996.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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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중국해의 조어도를 둘러싸고 중국과 일본 사이의 긴장이 계속 고조되고 있다.조어도(일본명 센카쿠열도)사태가 우리에게 의미를 지니는 것은 이 사태가 중국과 일본 간의 영유권분쟁을 넘어서 동북아의 안보환경의 추이를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조어도 사태는 민족주의의 장력에 이끌리고 있다.

중국에서 민족주의는 공산주의의 퇴색에 따른 이념적 공백을 메우고 있다. 「국혼 창조」니 「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인」이니 하는 말이 중국인의 민족주의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또한 중화권의 중국, 대만, 홍콩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은 바로 조어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이 바로 대중화주의의 발로이자 결속체임을 시사한다. 대중국은 일본의 조어대등대 설치를 중화민족의 삶의 영역(Lebensraum)에 대한 도전으로 파악하고 있다.

민족주의가 새롭게 발흥하고 있는 것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NO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가 하면 최근에는 각료의 야스쿠니신사참배, 조어도·북방 4개도·독도 등에 대한 영유권주장이 제1당인 자민당의 선거공약으로 채택되었다. 역사왜곡을 조장하고 있는 역사교과서검정제도의 폐지도 백지화하였을 뿐 아니라 일부 의원들은 교과서에 실려 있는 종군위안부에 대한 기술을 삭제하기 위한 모임을 결성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조어도 사태는 동북아의 양대 강국인 중국과 일본의 민족주의의 경연장이며 이들이 벌일 패권경쟁의 서곡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냉전의 종식과 지구촌화의 진전으로 국민국가 중심의 근대적 국제질서가 약화하고 협력과 상호의존의 탈근대적 국제정치가 펼쳐질 것으로 이야기하지만 동북아에서는 오히려 민족과 영토 그리고 주권을 앞세우는 민족주의가 새로운 전성시대를 맞고 있는 인상이다.

근래 우리의 대외적인 관심은 거의 지나치다고 여겨질 만큼 대북관계와 그 관련사안들에 쏠린 감이 없지 않다. 이러한 경향은 동해안 무장공비침투 이후에 특히 두드러졌다. 그 와중에서 미국과의 전통적인 우호관계까지도 일시 긴장되는 결과가 빚어지기도 했다.

우리가 처한 열강쟁패의 험악한 안보환경을 고려할 때 집안 문제에만 지나친 관심을 쏟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호시탐탐 벽의 틈새로 기어들어오려는 쥐떼를 처리하는 것이 더 없이 중요하지만 싸움을 벌이고 있는 두 코끼리가 담장을 허물어뜨리지 않게 신경을 쓰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억지력을 지니게 힘을 기르는 것과 더불어 전통적인 동맹외교에 의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대미관계의 설정도 대북관계의 맥락에서만이 아니라 포괄적인 맥락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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