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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철도의 실패/이재승 논설위원(일요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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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철도의 실패/이재승 논설위원(일요시론)

입력
1996.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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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대역사라는 경부고속철도사업이 공기초반에 벌써 엄청난 실패의 늪에 빠져 있다. 얽히고 설킨 요인들이 하도 복잡하고 다양해서 정부조차 어떻게 풀어야 할지 자신을 상실하고 있는 것 같다. 국토의 대동맥이요 척추라 할 수 있는 경부고속도로(전장 428㎞)가 완공된 것이 70년 7월이다. 지금과 비교하면 거의 무의 상태에서 429억원(70년 세출예산 4,400억원)을 들여 2년5개월만에 끝낸 것이다.경부고속철도건설의 만신창이가 된 부진상을 보면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때의 역량이 어디갔는지 아쉽다. 물론 4반세기에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여건이 크게 바뀌었다. 개발독재시대가 지나고 문민정부시대가 왔다. 경제가 관주도에서 민간주도로 넘어가고 있다. 정부조직도 중앙집권체제에서 지방자치시대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지역과 개인이기주의, 토지수매가격의 앙등 등이 새로운 걸림돌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러한 체제·제도 등의 변화가 위협적인 국가역량저하의 변명이 될 수 없다. 새로운 환경에서도 국가의 역량은 발휘돼야 한다.

진척이 실종된 경부고속철도의 실패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사업의 중요성도 그렇지만 그 사업이 현재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들이 우리가 사회간접자본(SOC) 개발에서 안고왔고 또한 앞으로도 부닥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압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부고속철도는 풀어야 할 문제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것도 모두가 하나같이 막대한 자금과 시간이 소요되는 난제들이다. 우선 충분한 사전준비없이 졸속 착공한 것이 오늘의 화근을 불러들인 큰 요인의 하나다.

물론 경부고속도로의 과밀과 계속 폭증하는 물동량으로 봐 고속철도의 건설은 빠를수록 좋은 것이다. 그러나 졸속은 금물이다.

이 기본원칙을 무시했다. 대선을 앞두고 92년 6월 전격 착공됐다. 지금은 역사의 심판대에 오른 노태우 전대통령이 주도했다. 전혀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왜 그처럼 서둘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당후보에게 유리하겠다고 판단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외국 시공회사인 벡터사 등의 로비에 의한 것인지 전혀 알 길이 없다. 어떻든 그 당시에 그런 상태에서 착공한 것은 무모한 것이다.

대통령으로서 노태우씨의 직무유기. 대통령의 책무는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고 헌법은 규정하고 있다.

그는 여기에서도 결과적으로 국민의 재산을 축내게 했다. 또한 경험이 없는 국내 업계에 설계와 시공을 맡긴 것도 잘못된 것이다. 우리 손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의욕만 앞세운 것이다. 공사과정에서 졸속계획과 부실설계의 후유증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평택과 수원 사이의 상리터널과 조남터널은 그 지역의 폐갱도때문에 안전상 부적합하다는 것이 밝혀져 노선자체를 변경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경주지역은 문화재보호 차원에서 역시 노선변경이 확실해졌다. 이 때문에 대구·부산은 기존 노선을 전철화, 2002년 경부고속철도 운행에는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사전에 부처간이나 관계집단 사이에 충분한 협의를 하지 못했던 데서 오는 차질이다. 그 낭비는 크다. 또 하나의 큰 걸림돌은 지역 및 개인 이기주의다. 대구·대전역은 지역주민의 강력한 요구로 지하에 건설토록 수정됐다. 돈과 시간이 그만큼 더 소요되는 것은 말할 것 없다.

서울시와 건교부의 이견으로 서울지역의 중앙역사 입지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는데 역시 불투명하다. 신속히 이뤄져야 하는 용지수매도 지주의 고가요구로 부진하다. 소음방지 요구, 토지보상 이의 등 각종 민원도 1,000여건이나 된다고 한다. 공사가 진척되기가 어렵다. 완공시기와 공사비만 늦춰지고 늘어난다.

89년 계획에는 「총공사비 5조8,000억원, 완공연도 98년으로 잡았으나 93년 1차계획 변경에서는 10조7,000억원, 2002년이 됐다. 내년 봄에 밝힐 제2차 수정에서는 공사비가 4조원 늘어나고 공사기간은 3년정도 추가 연기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게다가 공기지연에 따른 철도차량 인수지연으로 인한 위약금도 1억달러나 된다고 한다. 건설비용이 너무 높으면 경쟁력을 잃는다. 경부고속철도는 완성된다 해도 만년적자의 애물단지가 될 수 있다. 정부는 경부고속철도 건설에 대해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다. 특별법 제정도 한 방법이겠다. 정·관·민 등 관련 이익집단의 협력이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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