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 독립투쟁·인권보호 공헌/벨로 주교인니 군부 학살 등 자행 세계 고발/오르타전세계 돌면서 「비폭력독립」 호소「동티모르의 로메로 주교와 독립운동 전도사」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해온 동티모르의 가톨릭 주교 카를로스 필리페 시메네스 벨로(48)와 독립운동단체 대변인 조세 라모스 오르타(46)가 올해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됐다. 다소 예상밖이지만 노벨상위원회가 이들을 평화상 수상자로 뽑은 것은 이들의 비폭력 독립운동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76년 인도네시아에 강제 편입된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의 철저한 탄압정책으로 수만명이 사망하는 등 인권부재지역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인도네시아는 특히 이 지역에 군대를 상주시켜 독립운동을 하는 인사들을 적법한 절차를 밟지않고 사살하거나 강제구금하는 등 비인도적 행위를 저질러 세계적인 비난을 사왔다. 회교도인 인도네시아 국민들과는 달리 인구 80만명중 10분의 9가 가톨릭인 동티모르인들은 이 때문에 독립운동을 이끌어온 정신적 지주인 벨로 주교와 전도사 역할을 해온 오르타를 누구보다도 존경해왔다.
48년 동티모르의 바카우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벨로 주교는 80년 신부서품을 받았다. 파투마카기술학교 교장을 역임하기도 한 그는 동티모르 사도행정관 등을 지낸 뒤 88년 6월부터 현재까지 주교직을 맡아왔다. 그동안 인도네시아 군부의 감시와 탄압에도 불구, 인도네시아 당국에 의해 살해되거나 실종된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해 인권단체 등에 제공해왔다. 또 89년 당시 유엔 사무총장에게 유엔이 이지역의 운명을 결정하는 국민투표를 실시해 달라고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91년 11월 인도네시아 군부가 동티모르 시위대에 발포, 200여명을 살해한 참상을 전세계에 알렸다. 그는 미사때 인도네시아 군인들이 성당에 난입, 독립운동가들을 사살하려 하자 마치 엘살바도르의 로메로 주교처럼 몸으로 저지하기도 했다.
50년 동티모르의 딜리에서 포르투갈인 아버지와 동티모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오르타는 미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에서 국제정치와 법학을 공부했다. 그는 인도네시아 군이 75년 동티모르를 침공했을 때 전세계를 돌면서 동티모르의 독립을 호소해왔다.
이후 20여년간 망명생활을 하면서 타고난 외교관 기질을 발휘해 유엔과 유럽 각국 등에서 유창한 영어와 불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로 독립이 무엇보다 동티모르인들에게 소중하다는 점을 피력해왔다. 그는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마우베레」(동티모르인이라는 뜻)란 이름의 17세된 아들을 두고 있다.<이장훈 기자>이장훈>
◎평화상 수상 스케치/인니,수하르토 동티모르 방문 앞두고 발표에 당혹
○…호주의 시드니에서 어머니와 함께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조세 라모스 오르타는 11일 수상소식이 알려진 직후 현지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은 기쁨이자 동시에 슬픔』이라는 말로 소감을 밝혔다. 그는 『벨로주교와 함께 이상을 받아야 할 사람은 92년 투옥된 독립운동지도자 하나나 구스마오』라며 겸손해했다. 한편 카를로스 벨로 주교는 과거 동티모르의 수도였던 딜리의 한 학교에서 미사를 집전하던중 수상소식을 들었다. 그는 2,000∼3,000명의 신자들과 미사를 마친뒤 로이터통신과의 전화통화에서 『이는 동티모르인뿐 아니라 모든 인도네시아인들의 승리』라고 소감을 피력했다. 두사람은 상금으로 740만 크로노르(약 9억원)를 받게된다.
○…인도네시아는 두사람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데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수하르토 대통령의 동티모르 방문을 나흘 앞두고 두사람의 노벨평화상 수상사실이 발표되자 인도네시아정부는 더욱 당황하고 있다.
무르디오노 국무장관은 노벨평화상 발표 직후 『매우 놀랍고 충격적인 일』이라며 『노르웨이 노벨평화상위원회가 그들에게 평화상을 준 까닭을 이해할수 없다』고 반발했다.
○…동티모르의 식민종주국이었던 포르투갈의 조르제 삼파이오 대통령은 카를로스 벨로 주교와 조세 라모스 오르타가 올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데 대해 즉각 환영의사를 밝혔다.<시드니·자카르타·리스본·로마 외신="종합">시드니·자카르타·리스본·로마>
◎동티모르는 어떤 곳/450년간 포르투갈 식민통치이후 독립/75년 인니에 강점 주민들 수만명 피살
호주 북부의 다윈에서 북서쪽으로 405㎞,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2,000㎞떨어진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가 합병하기 전까지는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오지였다. 동티모르의 면적은 1만4,874㎢이며 80만명이 살고 있다.
450년동안 포르투갈 식민지로 있었던 동티모르는 74년 포르투갈이 주둔병력을 철수하면서 아무런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아 문제가 시작됐다.
동티모르 독립혁명전선(프레틀린)이 75년 11월28일 「동티모르 민주공화국」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정부는 동티모르내 친인도네시아 인사들과 협력, 그해 12월 7일 동티모르를 침공했다. 이 과정에서 동티모르의 주민 6만여명이 학살됐다. 인도네시아정부는 76년 7월 동티모르를 인도네시아 27번째 키모르티무르주로 강제 편입시켰다. 또 동티모르의 전통언어와 의상을 쓰고 입지 못하게 하는 등 철저한 말살정책을 폈다.
유엔도 72년부터 82년까지 인도네시아 만행을 비난하는 10개 항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또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병합을 인정하지 않아 지금까지 동티모르를 포르투갈령으로 남아 있게 했다.
91년 11월 인도네시아 군대와 경찰이 동티모르의 딜리시에서 평화적인 집회를 벌이던 동티모르인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해 200여명을 학살한 「산타쿠르즈사건」은 동티모르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 사건으로 세계여론이 비등해지자 인도네시아 정부는 형식적이지만 최초로 잘못을 시인했다.
동티모르 주민 대부분이 가톨릭을 믿고 있어 세계 최대 회교국인 인도네시아는 다른 섬에서 회교도를 이주시키는 방법으로 주민 개조에 나서고 있으나 긴장을 고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권대익 기자>권대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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