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 오케스트라와 협연 유행/불 미술평론가 평 얻기 장사진/문학선 일 소설 흉내내기 경쟁외국서 활동하다 국내에 정착한 성악가 C씨는 최근 다시 외국으로 나갈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국내 최고수준이던 개런티가 귀국 후 날로 깎일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음악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어 많은 것을 포기하고 돌아왔지만 지금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국제 수준보다 한 단계 낮은 「국내용 가수」라는 눈길이다. 지금도 일년의 절반은 외국 무대에 서고 점점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도 그렇다. 외국서 자신보다 낮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 귀국공연을 할 때마다 과대선전되고 더 많은 개런티를 받는 것을 자주 보면서 좌절감과 함께 문화사대주의를 실감하고 있다. 그는 부당한 대접에 대해 억울한 생각을 하고 있다. 외국서 활동하다 귀국한 연주가 대부분이 비슷한 경험과 느낌을 갖고 있다.
최근 4∼5년 동안 국내 연주자들이 외국, 특히 동유럽나 구소련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협연을 해도 기왕이면 외국 오케스트라와 해야 인정받는 비뚤어진 풍토 때문에 연주자들이 돈을 주고 오케스트라를 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동유럽권의 그저그런 오케스트라와의 협연비용은 400만∼500만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정상급 오케스트라는 결코 돈을 받고 무대를 내주는 법이 없다. 그러나 사회주의 붕괴 이후 정부지원이 끊겨 곤란을 겪고 있는 동유럽권의 많은 오케스트라에 한국인협연자는 좋은 수입원이 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국내 연주자를 외국의 가난한 오케스트라와 연결해주는 전문업체까지 등장했다.
우리 것은 어쩐지 못미덥고 외국 것이라면 일단 더 낫게 여기는 경향은 음악 뿐 아니라 문화 전반에 두루 퍼져 있다. 이달 중순 전시회를 여는 한 작가의 전시회팸플릿에는 프랑스평론가 N씨의 평이 실렸다. 그런데 N씨는 설치미술과 사진전문가다. 서로 분야가 다른 두 사람의 이처럼 어울리지 않는 짝이 이뤄진 것은 외국평론가를 선호하는 국내 미술계풍토 때문이다. 조각가든 화가든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국내 작가들이 너도 나도 N씨의 평을 받으려 줄을 선다. 그들은 『나를 제대로 평가할 사람이 국내 평단에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프랑스에 있는 N씨보다는 국내 평론가들이 그들의 작품을 더 잘 알고 자주 보아왔음을 생각할 때 그다지 설득력 있는 설명은 못된다. 중진화가가 프랑스에선 이미 영향력을 상실한 평론가의 평을 받으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
문학 동네에도 사대주의는 있다. 한동안 푸코, 데리다 등 프랑스문학이론이 휩쓸더니 지금은 감각적, 냉소적 성향의 일본소설 풍이 유행이다. 젊은 평론가 중에는 평론의 질적 수준을 갖추기보다 외국 유명비평가의 문체 흉내내기에 몰두하는 이들이 많다. 문화수출시대에 수출은 커녕 끝없이 외국 것만 좋아하고 우리 것을 홀대하는 풍토가 지속될 때 이땅의 문화는 자생력을 잃고 「안방」마저 내줄 우려가 있다. 우리 문화를 아끼고 키우려는 노력과 투자가 선행될 때 문화사대주의는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오미환 기자>오미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