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적 국학연구방식 귀감학문의 세계는 한없이 자유스러운 것 같지만 학자들의 세계는 사실 편협하기 그지없다. 어줍잖은 정통성을 내세워 다른 학설을 억압하는 경우가 그 한 예이다. 일제 관방학문이 신학문의 기치를 내걸고 이 땅에 들어왔을 때 우리의 전통학문은 하루 아침에 주변부의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이른바 굴러온 돌에 의해 박힌 돌이 빠지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이 나쁜 선례는 지금까지도 우리 학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 자기 입장에서의 목소리를 강하게 내고자 하면 「재야적」이니 「비객관적」이니 하는 등의 비난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러나 학문이 투명하게 객관적이라고 신봉하던 시대는 지나간 지 오래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스스로 「정통적」이고 「객관적」이라고 말해왔던 지금까지의 학문관행에 대해 반성적으로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요청되는 것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따르고 신봉해온 제도학문의 결을 거슬러 생각할 수 있는 자생적인 사고역량이다.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국학자 자산 안확(1886∼1946)의 업적이 이 시점에서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최원식 정해렴 선생이 편역해낸 「안자산국학논선집」(현대실학사·1996)은 안확의 문집 중에서 문학사, 문학론, 시가론, 역사·음악·미술사론 등의 내용을 추려 한 권의 책으로 꾸며본 것이다. 이 중 「조선문학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문학통사로서 의미가 크거니와 문학사관·서술체제 등에 있어서도 독특한 입장을 보인다. 그 밖에 위항문학 연구를 개척한 평민문학론, 그의 득의의 영역으로서 경기체가라는 용어를 창안한 시가론 등도 탁월한 성과이다. 그는 민족문학으로서 시조의 수월성을 높이 평가하였고 고구려의 문학정신을 크게 고취하는 등 주체적인 문학관점을 피력하였다. 아울러 학제적 견지에서 문학·예술에 접근하는 그의 학문방식은 오늘날의 문화론적 해석의 선구라 할 만하다. 우리의 제도화한 학문경향을 반성하고 새로운 전망을 위한 자양을 길어옴에 있어 안확과 같은 국학자의 업적은 커다란 힘이 된다 할 것이다.<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정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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