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숭동시절 교정 노숙·「칫솔부대」 유행/유신 불만 쌍쌍파티로·80년대 시위 분출/90년대 신세대들 “끼리끼리” 개인주의서울대는 9일 동숭동 시절의 낭만과 관악캠퍼스 이전 후의 적응기, 암울한 유신시절과 본격적인 정치참여기를 거쳐 신세대 학생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서울대 풍속사를 정리한 「서울대 50년사」를 출간했다.
「서울대 50년사」는 50∼60년대 동숭동시절을 「거지문화시대」로 이름지었다. 이 시기에는 돈이 없어 하숙비를 못낸 학생들이 교정벤치에서 노숙하거나 수위실 화장실에서 이를 닦는 「칫솔부대」가 유행했다고 한다.
75년 2월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뒤 79년까지의 「종합화시대」동안에는 서울대 개정설치령에 따라 문리대와 상대가 사라지고 인문대 자연대등 이름도 생소한 대학조직으로 재편됐다. 학생들은 이 기간에 황량한 캠퍼스에 대한 「적응기」를 보냈다고 이 책은 설명했다.
이후 긴급조치 9호와 학도호국단설치령, 교수재임용제 등 유신의 암울한 분위기에서 현실 참여보다는 냉소주의에 빠져 카지노를 하거나 고고와 블루스춤을 추는 쌍쌍파티로 억눌린 감정을 표출하는 「긴조(긴급조치)시대」를 맞는다.
서울의 봄으로 시작된 80년대 「졸업정원제시대」는 곧 현실참여의 시대였다. 모든 대학문화의 주류는 민중으로 귀결되고 학생들의 관심은 농촌, 공장 등 생산현장으로 이어졌다. 학생들의 폭력시위가 과열되면서 「무탄무석·무석무탄」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졸업정원제와 본고사 폐지, 과외금지 등을 골자로 한 80년의 「7·30 교육개혁조치」는 캠퍼스의 과밀화와 과열 학점경쟁을 불러 「ET(이번학기 탈락자)」 등 은어가 유행했다. 또 「개빙고」(개강빙자 고고팅) 「종빙고」 등 대학의 낭만도 퇴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린벨트로 묶여 찻집하나 없이 황량하던 학교주변 풍광도 바뀌었다. 30분이상을 걸어서 찾아가던 「한잔집」의 빈대떡과 「일미집」의 생선찌개 대신 「달과 6펜스」 「학촌」 등의 신식 레스토랑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마이카대학생」이니 「과외갑부 대학생」은 이제 낡은 단어에 불과하다.
90년대가 되면서 관악에도 신세대가 등장한다. 이른바 「탈정치 세대」. 「마음003」이라는 동성애모임까지 만들어졌다. 집단적인 모임보다는 「끼리끼리」를 선호하는 개인주의가 더욱 팽배해지면서 「주인없는 대학」 「모래알의 집합체」 등 서울대의 고질병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최윤필 기자>최윤필>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