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행 재확인” 대북강경 줄달음/정부 “전면적 대치상황도 불사”/미도 「수습」 위주 고수 어려워져무장공비침투사건과 북한의 보복협박으로 야기된 남북 긴장 관계가 공비잔당의 양민 살해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정부는 공비들의 양민 살해가 사태의 새로운 확산이라고 보고 대북 강경 논리를 강화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이번 사건으로 무장공비침투사건에 대한 남북한간 입장의 시비가 더욱 분명해졌다』면서 『북한은 우리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질타 여론에서 더욱더 벗어나기 힘든 처지에 놓이게 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기존의 경수로사업, 대북 경협, 민간차원의 식량지원 등의 제한 및 유엔과 미국 등 국제사회를 통한 대북 압박 강도를 높여 나간다는 방침이다.
정부의 최고책임자가 수차례 나서 대북경고 메시지를 전한 상황에서 이같은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에 강경책을 강화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이 상투적 적반하장식 협박과 추가 도발로 응수해 사태가 악화할 경우 경수로사업을 포함한 대북 관계 동결을 공식 선언하는 등의 전면적 남북 대치상황도 불사한다는 것이 정부의 단호한 입장이다.
문제는 북한의 반응과 한미공조체제의 정도이다. 북한은 명백히 곤란한 입장에 처했다. 북한은 무장공비침투사건 이후 「무장도 하지 않은 우리 인민군 군인」들을 「학살」했다고 역공세를 펴왔는데 공비들의 양민살해로 그 주장은 스스로 모순임이 드러났다. 아무리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공작원의 세계라 하더라도 양민 살해는 변명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은 우리측에 덮어씌우기식의 역주장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북한 권력층내에서 군부를 비롯한 강경세력의 입지가 이번 사건으로 강화됐기 때문에 이들 강경파가 물러선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북한은 최덕근영사피살사건도 우리의 「조작극」이라는 선전을 계속하며 개입을 부인하고 있다. 또한 「인민군인들이 남조선 군의 과잉소탕 작전속에서 생존을 위해 대응하고 있다」는 식의 비켜나가기 선전을 할 소지도 다분하다.
그러나 살해된 3구의 시체가 갈대로 교묘하게 위장돼 있고 현장주변에서 제조번호가 표시돼 있지 않은 M16 소총탄피 20여개가 발견되는 등 북한의 어떠한 변명도 설득력이 없기 때문에 결국 북한은 변명과 위협의 양면전술로 대응하리라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그동안 우리의 대북 강경책에 이견을 가졌던 미국도 이번 사태로 인해 우리 입장의 타당성을 확인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10일 방한하는 윈스턴 로드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차관보는 우리의 대북 강경기류가 더 이상 「확대」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미국의 입장을 전달하려 들것으로 관측됐다. 그러나 민간인 살해사건으로 이미 사태가 「확대」돼버린 이상 미국도 「사태의 조기수습」만을 고집할 수 없게 됐다. 이 경우 관건은 한미공조체제를 어느정도 유지하느냐가 된다.<김병찬 기자>김병찬>
◎군 작전 완전변경 불가피/병력이동배치… 수색·길목 매복 병행 강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던 군의 대공비작전이 양민학살이란 예기치 못한 변수로 일대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9일 하오 강원 평창군 진부면 탑동리 오대산 고지에서 민간인 3명이 공비에 살해된 채 발견되자 군은 크게 당혹해 하고 있다.
지난달 18일 강릉해안에서 좌초된 잠수함이 발견된 뒤 공비에 의한 민간인 피해가 전혀 없었던 터라 군은 더더욱 난감해 하고 있다. 군은 이달 들면서 민간인 살상 가능성을 사실상 배제한 상태에서 마무리 작전을 해왔다.
게다가 군은 공비 소탕작전에 투입됐던 병력 대부분을 최근 원대복귀 시킨 상태였다. 추석직후 합참의장이 갖고 있던 작전지휘권을 1군 사령관에게 넘겨준 뒤 군은 사실상 작전종결을 위한 수순을 밟아왔다. 특히 판문점 정전위에서 북측의 보복협박이 있은 뒤 작전을 위해 투입했던 병력을 정규전에 대비해 철수 시키고, 주둔병력에 의한 매복위주의 작전을 해왔다. 섬멸을 전제로 한 소탕작전도 월북저지 중심으로 바뀌었다.
군은 5일 군사분계선에서 5㎞ 떨어진 비무장지대(DMZ)의 강원 고성군 검봉산에서 북측과 교신하는 무선이 잡히고 난 뒤에는 공비들의 월북기도에 온 신경을 집중시켜 왔다.
전례대로라면 기존 지역배치 병력에 의한 매복작전도 일정기간 아무런 단서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면 종결하게 돼 있었다. 그러나 살해된 민간인 3명이 발견된 지점은 무선교신이 포착됐던 건봉산에서 남쪽으로 무려 80㎞ 떨어진 곳이다. 또 공비 대부분이 은신하거나 사살됐던 칠성산에서는 서북쪽으로 30㎞ 떨어진 지점이다. 따라서 군은 건봉산과 칠성산을 중심으로 전개돼 왔던 매복작전을 완전 변경할 수 밖에 없게 됐다.
군은 일단 특전사 병력을 주축으로 이 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 정밀수색작전을 펼 계획이다. 그러나 이 지역은 태백산―오대산―설악산이 1천2백∼1천3백고지의 능선으로 연결돼 있어 포위수색작전이 대단히 힘든 곳이다. 따라서 주요 길목을 차단하는 매복작전을 병행해야할 입장이다.<홍희곤 기자>홍희곤>
◎정부 반응·대책/“철저수색·사망원인 면밀조사” 청와대/국제사회에 만행알리기 나서외무부/긴급대책회의 등 다시 초비상국방부
정부는 9일 하오 양민살해 소식이 전해지자 공비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고 보고 대응책 마련을 서둘렀다.
▷청와대◁
김영삼 대통령은 이날 하오 유종하 외교안보수석으로부터 주민 3명이 공비에게 살해된채 발견됐다는 사실을 보고받고 철저한 수색작전을 거듭 지시했다. 청와대는 이와 관련한 별도의 회의를 갖지는 않았으나 안보상황실을 통해 일보가 접수되자 사망원인등을 면밀히 조사하라고 군에 지시했다.
▷외무부◁
외무부는 국방부를 통해 사실을 확인한뒤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추가조치를 추진하고 있는 뉴욕주재 유엔대표부에 이를 긴급 통보하는 등 국제사회에 만행을 알리는 작업에 들어갔다. 외무부 당국자는 『무장공비에 의한 양민살해는 이번 사건이 명백한 무력도발이라는 점을 재확인해주고 있다』면서 『정부는 이같은 사실을 미국과 안보리 회원국들에 강력히 환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
공비 잔당 소탕작전이 한동안 소강상태에 빠진데다 작전권마저 1군에 넘어가 다소 긴장을 풀고 있던 국방부 합참은 이날 하오 현장으로부터 첫 보고를 받고 또다시 초비상에 들어갔다.
이양호 국방장관은 보고를 받는 즉시 합참에 정확한 상황파악과 신속한 조치를 지시했고 김동진 합참의장은 하오 4시50분께부터 김동신 합참작전참모부장과 서태석 정보참모부장, 신상길 작전처장 등을 불러 긴급대책회의를 가졌다.
이에 앞서 합참은 사건이 발생한지 3주가 지났고 더이상 도주공비들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자 조만간 수색작전을 마무리하고 장기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회의를 준비중이었다.
합참은 숨진 민간들의 시신이 갈대로 위장돼 있고 주변에서 제조번호가 없는 M16소총탄피들이 발견된 점등으로 미루어 전문공작원 2명의 소행으로 일단 심증을 굳혔다.
양민이 희생된 지역은 원래 군수색작전 대상지역이긴 하지만 사건이 발생한 8일에는 이곳에 대한 수색작전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지역을 포함한 태백산―오대산―설악산은 모두 한 줄기로 연결돼 있어 공비나 간첩들의 기본 도주로이다. 이곳은 강원도의 대표적인 오지로 68년 12월 울진·삼척사태때 공비들이 「이승복 어린이」를 살해한 곳에서 불과 10여㎞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신재민·홍윤오 기자>신재민·홍윤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