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군 삼엄경계속 뜬눈 밤새워/“설마 했는데…” 만행에 치떨어/“8일부터 총소리 심상찮았다”【평창=특별취재반】 8일 오대산에 입산했다가 실종됐던 이영모씨(53)와 김용수씨(44)가 9일 살해된 채 발견되자 오대산 끝자락에 위치한 산골마을인 평창군 진부면 탑동리는 일순간 불안과 공포에 빠졌다.
주민들은 『8일부터 간간이 들렸던 총소리가 심상치 않았다』며 공비들이 비무장한 민간인에게 잔인하게 총격을 가한 만행에 치를 떨었다. 주민들은 이씨 등의 시신이 발견된 이후 군당국의 삼엄한 경계 아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 마을은 30여 가구가 모여 감자 배추 등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고 있는 전형적인 산골벽지. 이맘때면 오대산과 계방산에 올라가 느타리 송이 영지 등을 채취하며 생계를 보태고 있다. 주민들은 하던 밭일을 모두 중단하고 살해된 이씨 집에 모여 안전대책을 강구했다.
주민 함중호씨(38)는 『우리 마을은 큰 마을에서도 떨어져 평소에도 삭막한 곳』이라며 『공비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한동안 없어 이제 생업에 복귀하고 있는데 오지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고 말했다.
8일 하오 이들의 실종사실을 신고했던 주민 유갑렬씨(43)는 『이씨 등은 이 지역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로 길을 잃거나 조난을 당했을 이유가 없다』며 『산에 올라가면 늦어도 하오 4∼5시께까지는 내려오는데 오지 않아 큰 일이 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 신고했다』고 말했다.
이 마을 뒷산을 넘어가면 상원사와 월정사로 통하고 곧바로 태백산맥의 주능선으로 빠져나갈 수가 있어 주민들은 공비들이 이 곳을 월북루트로 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4일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된 후 이날 하오 10시부터 통금이 다시 실시된 진부면과 도암면 일대는 주민들이 일찍 귀가하는 바람에 스산한 모습이었다.
진부면 상진부 2리에 사는 이호섭씨(51)는 『무장공비가 이곳까지 숨어들어 오다니 정말로 지독한 훈련을 받은 것 같다』며 『공비 때문에 강원도 주민들이 전국체전도 제대로 못치르고 농사도 짓지 못하고 있다』며 한숨지었다.
◎버섯채취중 희생된 3인/「억척이」 아저씨와 양같은 노총각 “참변”/맨손으로 농사 시작 착실히 재산모아이영모씨/농담 잘하고 인정많던 전형적 산사람김용수씨/고향서 혼자살며 아들·손자 뒷바라지정우교씨
숨진 이영모씨(53)는 감자와 배추농사를 지으며 간간이 버섯채취도 하던 성실한 가장이었고 김용수씨(44)는 영지와 느타리버섯을 캐 생계를 이어가던 마음씨 좋은 노총각이었다.
이씨는 8일 상오 8시30분께 이웃에 사는 김씨와 함께 집을 나섰다. 부인 문예덕씨(46)에게 『재미재에서 버섯을 따고 하오 4시께 돌아오겠다』고 말한 것이 마지막 남긴 말이었다.
이씨는 결혼후 외지에서 부인과 함께 들어와 병선(19) 병현(17) 형제를 낳아 기르며 제2의 고향으로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순박한 성격의 이씨는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아 주위에서 「억척이」로 불렸다. 맨손으로 농사를 시작한 이씨는 감자 배추 당귀약초 재배에도 손을 대 착실히 재산을 늘렸다. 부인 문씨는 『일밖에 모르고 살다 호강 한번 제대로 못하고 갔다』며 통곡했다.
이씨와 나란히 숨진 김씨는 어린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함께 버섯을 채취하며 큰 전형적인 산사람이었다. 7년전 아버지마저 숨지자 진부면 척천리 방아다리 약수터 직원으로 일하다 올 봄 모교인 두일초등학교에서 기거하며 잡일을 하다 변을 당했다. 과묵한 김씨는 산밖에 모르는데다 가난한 환경탓에 노총각으로 지냈다.
주민 함재현씨(73)는 『평소 농담도 잘하고 인정도 많아 자식처럼 아꼈는데…』라며 안타까워 했다. 비보를 접하고 이날 밤 진부면에 달려온 여동생 김순희씨(42)는 『지난 여름 「한번 놀러가겠다」던 연락이 마지막일 줄 몰랐다』며 오열했다.
이들과 3백여m가량 떨어진 곳에서 숨진채 발견된 정우교씨(69·여)는 대구에 사는 아들과 손자 뒷바라지를 위해 대구와 탑동리를 오가던 모정이 극진한 할머니였다. 정씨는 고향인 이곳에서 혼자 생활하며 버섯과 약초를 캐 대구의 아들집에 갔다주는 것을 낙으로 삼아왔다고 이웃들은 전했다. 이웃에 사는 조카 강성우씨(40)는 『작은 어머니가 산에 올라가 실종된 줄도 몰랐다』며 『입만 열면 대구에 사는 아들과 손자얘기를 했었다』고 울먹였다.<배성규 기자>배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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